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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02. 피안의 언덕을 넘어 - 소백산 구인사

by 나무에게 2014. 1. 15.


002. 피안의 언덕을 넘어 - 소백산 구인사 / 온형근



그대들이 피안의 언덕을 넘어

이곳 소백산 줄기를 찾는 건 내가 알바 아니다. 그대들이 법복을 입었든 추운 날 돕빠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쓰고 언덕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여도 또한 내가 알바 아니다. 일찍이 이곳 자리한 구인사의 모습이 그러하다. 단양 영춘의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들여 골골 계곡에 전각들이 들어섬이 보통의 안목이었겠는가. 공간은 보여주고 감춰줌으로 그 위용을 갖춘다. 좁혔다가 넓혀서 수시로 다른 세계를 보여줌이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저 넓은 중원의 들판이 아닌 것이다. 협소하고 산으로 꽉 막혔다. 물줄기 계곡으로 흐르면서 다져진 터로 흘러든 돌들이 그 바닥을 이루었다. 지반이 든든한 게 이곳의 산세가 보통 이상의 후덕함으로 지원하고 있음이다. 일찍이 산세에 힘입어 좋은 기운이 골짝 가득 넘실거렸을 것이다.


시야가 좁아졌는가 싶으면 

눈밭에 퍼질러 앉은 엉덩이 자국처럼 넉넉한 물러섬이 둘러싼 산들의 관용이다. 어김없이 전각들이 자리하였으나 그 자리 또한 평퍼짐한 게 아니다. 전각의 앞은 발바닥을 디뎌 섰지만, 뒷쪽 벽면은 이미 내 키를 훨씬 넘어선 산자락에 의지하고 있다. 그날 지상을 떠나는 영혼에게 나는 웅장하고 벅찬 감동으로 전율하고 만다. 사십구재라는 게 이렇게 장엄할 수 있다는 것을 구인사의 일주문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천왕문을 지나면서 다시 좁아지더니 왼편으로 템플스테이 건물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일상의 나날과 다를 바 없는 풍경으로 각인될 뿐 특별하지 않았던 것이다. 5층 대법당인 설법보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십구재에 들앉아 예를 갖췄다. 우주와 사람과 삶과 죽음과 종교와 수행자와 객과 주인의 오만가지 생각의 가지들이 순식간에 스쳤다. 내가 천상에 이르는 영혼이었고, 내가 부모를 잃은 자식이었고, 내가 우주의 미아였고 그리하여 오로지 피안의 언덕과 골짝 가득 영험한 기운만으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주 짧은 회향回向이었으나 질긴 인연처럼

강력한 이끌림이었다. 어려서 숱하게 들어왔던 구인사를 이제 처음 찾게 된 사유가 존재함을 믿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구법을 행함일까. 나 역시 구복의 순례에 들어선 것일까. 뭐면 어쩌랴. 이렇게 깊은 울림이면 충분하다. 삼삼오오 또는 가족들이, 그리고 세상의 끝을 향해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선한 눈매에 간절한 응시로 뚫어져라 자기 내면으로 들어서는 군상을 모두 꿀꺽 삼키고는 산자락도 전각들도 터무니 없이 천진난만할 뿐이다. 저절로 몸을 낮출만하다고 절로 손이 모아진다고 걷는 품새까지 함께 영험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이다. 설법보전에서 사십구재 영혼을 봉송奉送하면서 하늘을 향해 불던 나발 소리가 내 안에 그대로 박혀서 울림으로 남는다. 사람이 격해서 울 때 내는 소리와 나발 소리는 구별이 곤란했다. 나발 소리에 나를 맡겨 내가 우는 소리로 화답하였는지 어느새 젖어 있는 눈가로 손등이 다가선다. 기댈 언덕도 피안도 모두 나발 소리 닮은 격한 울음 소리 하나로 뭉뚱거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