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休林山房

003. 여수여풍如水如風의 맑은 발걸음 - 용문 상원사

by 나무에게 2014. 1. 17.



003. 여수여풍如水如風의 맑은 발걸음 - 용문 상원사 / 온형근




살아 있는 하마비, 주차장

입구에서 차를 세워야 했다. 아차 싶을 때 지나친 것이다. 끝까지 차로 올라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누군가 상원사를 오르는 이 계곡길이 수행이라고 말한 것을 믿는다. 차를 서로 비켜가는 곳까지는 가야 돌리던지 결정될 것이다. 마침 적당한 공간에 차를 90도로 돌려 주차한다. 주차장 입구가 요란하지 않아 지나친 것이다. 예기치 않은 지나침 그러나 자꾸 뒤에서 당기는 힘, 살아 있는 하마비였다. 아직도 마르지 않은 계곡물이 흐른다. 조랑조랑 내는 물소리가 정겨워 긴장이 해제된다. 여름비에 많이 시달려 계곡은 움푹 파져 있다. 길과 계곡 바닥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려다 보는 시선에 반짝거리는 햇살이 물위에서 춤춘다.


계곡을 빛내던 겨울나무

겨울나무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촘촘하게 가지들이 수를 놓는다. 나무마다 저마다의 선으로 성품을 드러낸다. 처음 물푸레나무를 보았을 때는 성긴 가지들로 일필휘지의 시원한 빗줄기를 긋는 듯 했다. 성긴 가지들은 굵은 가지를 지향하고 굵은 가지는 성긴 가지의 끝을 따라가 있다. 성긴 가지 끝에 겨울눈이 도톰하다. 이 겨울의 혹한으로 겨울눈은 살찐다. 조금 오르다 보니 굴참나무가 보인다. 굴참나무의 껍질은 코르크질이다. 울퉁불퉁 그러나 맵시 있는 질서감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이치에 내심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곳의 나무들은 양쪽 산을 바라보며 한눈 팔지 않고 똑바르게 하늘로 뻗는다. 그 시원스러운 자람의 모습에 겨울이 후련하다. 느티나무는 겨울나무의 아름다움을 혼자 독차지한다. 한수寒樹의 미美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잔잔한 가지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저토록 정교하고 따사로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막히다. 눈매가 맑아진다.


포행을 나선 스님의 행선

점심 공양 후 스님이 내리막길로 향하기에 어찌하여 속세로 행차하냐고 여쭈니, 스님은 포행나간다고 하신다. 나는 포행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 포행은 좌선 등으로 지친 몸을 운동삼아 걸으면서 풀어주는 것이란다. 그러니 포행 중에 다시 걷기 명상인 행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포행 나선 스님의 맑은 얼굴이 상원사 입구에 닿아서는 개 2마리와 포행 나선 또 다른 스님과 겹쳐진다. 1마리는 아주 순하여 풀려 나서고 1마리는 아직 칼칼한지 묶여 나선다. 이곳 스님들의 맑은 얼굴에서 사찰의 분위기 또한 명랑하고 그윽하게 다가온다. 계단을 오르니 점심 공양 시간이 아직 남았다. 법당에 들려 절하고 잠시 앉아 맑은 기운으로 좌선에 든다. 온기가 느껴진다. 꽤 높은 곳에 터를 잡았지만 양명한 곳이다. 공양주 보살이 늦은 공양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음식을 차려준다. 이 공양으로 포행 나선 두 스님의 얼굴이 또한 맑아졌으리라. 나 역시 한참이나 맑은 표정으로 상원사에 기대어 있었으리라. 맑다는 것은 혼자의 공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