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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1-영화 '청풍명월'과 방화수류정

by 나무에게 2013. 12. 23.

영화 '청풍명월'과 방화수류정 / 온형근
  


방화수류정을 찾아 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달을 기다리고 연못을 바라보고 화성의 옛 정취를 즐긴다. 꽃이 피고 버드나무가 제법 바람을 부르는 곳이다. 때로는 방화수류정을 바라보기 위해 연못으로 노닐기도 한다. 방화수류정에 올라서서 혹은 내려와서 바라보는 정취로 말하면 흥겹기만 하다. 은은한 흥겨움이 방화수류정을 지니게 하는 매력이다. 한국의 정자문화는 여름문화이다. 그렇다고 하여 한 계절 문화일 수는 없다. 사계절 내내 자기 색을 지닌다. 바람이 있고, 비가 있으며, 달이 뜨고 연못이 일렁인다.

화성의 곳곳이 나온다 하여 김의석 감독의 '청풍명월'을 보았다. 첫 장면이 경남 함양에 있는 유명한 정자인 '농월정'에서 시작한다. 계류에 여기 저기 산재한 너른 바위가 있고 멋진 정자가 놓여있다. 그러고 보면 영화 '청풍명월'의 사건들은 정자에서 일어나도록 장치되어 있다. 어쩌면 김의석 감독이 수원 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수원에 연고가 있음이 분명하다. '청풍명월'이라는 제목에 특별한 애착이 간다. 나 역시 제천에서 태어나 청풍명월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녔다.

영화에서도 청풍의 한벽루가 나온다. 한벽루는 지방공무원이시던 내 부친께서 풍류를 즐기기도 한 곳이다. 지금은 청풍문화단지 내로 옮겨 와 있지만, 원래의 자리에서 부친은 한벽루를 즐기셨다. 그리고 요즘 솔찮게 들락거리는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역시 영화에 의미있는 출연을 한다. 대사가 많지 않은 영화이고 한국적인 검술을 연출한 영화이지만 배경으로 나오는 정자와 수원 화성의 곳곳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매우 뛰어난 영상미를 제공한다. 권력과 권력 앞에 선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는 영화다.

지녔다가 내 던지는 인간 사회의 추잡한 형식을 영화 전반에 깔고 있다. 다소 무겁고 의미를 따라 가야 하는 긴장이 맴돈다. 주인공인 최민수와 조재현의 짧은 대사가 지금까지 남는다. 혼자 세상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의 절실함을 말하고, 두 사람의 끈끈한 애정이 물 속에 숨을 멈추고 함께 있는 체험에서, 같이 있기 때문에 행복했노라고 고백한다. 내가 잘못되어도 또 하나의 내가 나를 거둘 것이고 돌볼 것이라는 신뢰를 말한다.

요즘 나오는 영화와는 격을 달리한다. 웃기려는 시도도, 과격한 지나침도 없다. 다만 꽤 긴 시간동안의 싸움 장면이 유리창에 흐르는 비처럼 영상을 처리한 것이 지루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함양의 농월정, 청풍의 한벽루,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 화홍문, 창룡문 등의 주변 고색창연함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특히 은은하고 그윽한 빛의 영상미를 돋보이게 한다. 한지를 바른 문으로 내려오는 빛, 화홍문 바닥에 깔린 물의 빛살, 검에 새겨진 청풍명월이라는 글씨를 함께 보다가 받게 되는 검의 빛 등, 빛과 거친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의미들로 이어진 무거움이 가감없이 잘 표현된 영화다.

영화를 보기 위하여 센트럴시티를 찾아갔다가 종영이 되어 되돌아 온 일, 비 오는 방화수류정에 삼삼오오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이곳에서 영화를 찍은 것이 청풍명월이고, 그 내용이 대략 이렇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만난 김의석 감독과의 만남과 대화 그리고 막걸리 한 잔, 그 기연이 영화를 꼭 봐야 하게끔 하는 것이라 믿고 찾아간 수원 중앙극장(구 로얄극장)이 내가 결혼식을 한 중앙예식장 자리였다는 것, 그 극장 매표소에 재작년 졸업한 여학생이 반갑게 맞이하여 버선발로 뛰어 나와 반겼다는 것 등이 기연을 더욱 기연이게 심어 준다. 영화를 보기 위해 본연의 연수조차 땡땡이 친 내게도 기연의 문제는 크게 내재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