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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새 한 마리의 생각, 사고, 관점

by 나무에게 2013. 12. 23.

새 한 마리의 생각, 사고, 관점 /온형근



수원천은 생태조경을 공부하다 보면 도시 자연형 하천 복원의 시초로 표기되어 있다. 그 후로는 양재천이 나오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원천은 대표적인 건천이다. 광교 저수지에서 물을 보내지 않으면 그대로 마르고 마는 건천이다. 한동안 많이 다닌 의왕의 백운 계곡도 결국 건천화의 진행에 놓여 있다고 본다. 벌써 마르기 시작했다. 하천의 건강성은 건천화가 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건천이라는 것은 조금만 가물어도 이내 물이 마르는 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이 흘러야 하천이다. 물이 말라서 흐르지 않거나 흐르더라도 바닥에서 근근히 버티는 적은 양의 하천은 하천이 아니다.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말 그대로 너그러워도 오지랖이 지나치다. 문제가 발생하여도 그냥 나만 불편하지 않으면 덮고 넘어가는 행태를 다시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수원천의 자연형 하천 복원은 물 건너갔다. 시민들은 사행(蛇行)형 길을 따라 걸으면서 모기가 많다고 하소연하고, 그러면 하천의 식생들은 베어진다. 모기의 유충이 있어야 이 유충을 잡아먹는 생태적 먹이 사슬 고리가 이어진다. 함께 공존하면서 생태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시민들의 걷는 공원화에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안되는 것으로 자리 잡힌 것이다. 현명하고 똑똑한 시민들이다.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민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주어야 하는 건 선진정책이 아니다. 처음 수원천의 복원에 식재되었던 식생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지금쯤 스스로 하천이 살아 있게 되는 생태계 스스로의 변화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그곳을 공원처럼 이용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갯버들이 꽤나 생장했지만 베어진다. 새가 쉴 곳이 없어진다. 하천에서 새가 쉴 곳은 매우 중요한 생태적 지위를 지닌다. 어쩌면 세계문화유산 화성에 가려 수원천은 부수적인 덧칠로 여겨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저수지에서 물을 계속 흐르게 하여도 이미 수원천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얼지 않는 하천은 오염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척도다. 줄, 부들, 갈풀, 갯버들 등 수질개선식물을 식재하였지만 무성해지만 시민들의 걷기에 불편해지고 모기가 나온다는 말로 베어버려야 하는 단편화된 행정을 어찌 수정해야 할 것인가. 업무 영역이 다르다는 말로 서로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 엄청나게 식생이 변했다. 시각 환경의 공해라고 할 수 있다. 온갖 울긋불긋이 계절에 상관없이 식재되고 있다. 거기다가 올 봄에는 튤립 축제까지 한다. 저런 초화류가 자연형 하천에 왜 심겨져야 할까.

시민들의 시각을 만족시킨다고 심은 울긋불긋 초화류, 누구의 생각이고 저런 가볍고 상스러운 색감을 누가 좋아할까. 거의 원색으로 수놓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식재패턴을 시민의 혈세로 심어야 하는 것은 누구의 권유이며 계획일까. 툭하면 하천을 갈아엎는다고 한다. 다시 시민이 걷는 길을 뜯어고치고 있었다. 자전거도로와 사람이 걷는 도로를 만든다는 것이다. 산행의 폐해로 일컫게 되는 산길에서의 사람의 답압까지도 하천의 건천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 하면서 하천 양옆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려는 예산 사용은 어디서 가능하게 된 것일까. 도시화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건천화, 그리고 하천으로 합류되는 관거,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 하천의 직강화는 하천을 마르게 한다. 나무는 마르면 고사한다. 하천도 마르면 고사하는 것이다.

하천이 마르면 흐르는 물의 양은 당연히 고갈되고 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지와 수중을 오가는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알을 낳고 키워야 하는 데, 살 곳이 없어진다. 도시에 새가 사라진다. 경제적으로 보아도 하천 스스로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상실하여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예산이 또 필요하게 된다. 곧바로 증가되는 수질 오염은 어떤 방식으로 정화할 것인가. 이 또한 시민의 혈세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말인가. 이런 식으로 써야 할 곳에 못 쓰게 되는 예산은 결국 우리 사회의 산업을 붙잡고 말 것이다. 인위적으로 하천을 손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이제 수원천은 자연형 하천 복원의 표본으로 견학오는 것은 잘못되었다. 복원 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시민의 공원으로 다시 오염으로 치닫는 아주 잘못된 자연형 하천 복원사례로 견학되어야 할 곳이다. 이에 비해 수원 황구지천의 생태복원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천 복원에는 새 한 마리의 관점이 필요하다. 하천이 있고 새가 날아들 곳이 있고, 그곳에 서식하는 각종 알이 있고, 새는 또 각종 식물의 씨앗을 머금고 퍼트리고 새 한 마리가 마음껏 날아다니고 지저귈 수 있는 환경, 그것이 하천에서 잉태되어야 한다. 거기서 시민의 걷기, 자전거타기, 시민의 공원, 시민의 권리 등은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 새 한 마리에게 모든 공을 돌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고의 폭넓고 다양한 시각들이 모여야 한다. 미래의 생태적 사고를 요구한다. 새 한 마리의 사고만큼은 따라 잡는 정책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 역시 새 한 마리의 생각보다는 여유롭고 풍요로워야 하지 않을까. 자연형 하천 복원 성공 사례가 아닌, 실패 사례, 그리고 이미 시민의 공원으로 자리 잡은 수원천변의 울긋불긋 초화류 식재와 갈아엎고 중장비로 뒤집으며 새로 까는 자전거도로와 사람의 길을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주택관리신문, 2009년 6월 창간호 원고)

시인, 시집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연작시 : 화전], [슬픔이라는 이름의 성역], [풍경의 분별], [생명평화탁발시집 : 바다가 푸른 이유],[고라니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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