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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바위늪구비에서 배우는 소용돌이

by 나무에게 2013. 12. 23.

바위늪구비에서 배우는 소용돌이 / 온형근

강천 매운탕이라고 하면 '아, 거기......'하며 여주를 근거지로 삶을 살거나, 거쳐 본 사람이라면 대충 아는 척을 한다. 그 강천 매운탕이 새로 집을 지었단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밤섬'이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가을을 한 달만 살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밤섬이라는 것은 아마도 밤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여의도 근처에도 밤섬이 있고, 남양주에도 밤섬유원지가 있다. 그러나 강천에 있는 섬은 이제 밤나무가 없다. 예전에는 유원지처럼 되어 이름난 낚시꾼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느티나무와 벤트그라스 잔디가 재배되는 곳이다.

가야리를 관통하는 영동고속도로 교량 밑에서 차를 세우고 강천까지 걷는 생태탐사를 기획하였다. 12명이 함께 걸었다. 여주환경운동연합에 들려 바위늪구비 생태지도를 구비한 채, 따로 준비한 생태하천복원을 위한 식생군락 유형화에 대한 박사논문을 초록하였다. 남한강을 중심으로 연구된 논문이다. 꽤 많은 자료였지만 걸으면서 적당한 장소, 강근처에 모여 자료를 중심으로 현장 생태 학습을 하였다. 이렇게 가야리에서 바위늪구비까지 걷는 길은 아주 간단한 도보길이다. 곳곳에 사륜구동 차들이 정차해 있다. 습지처럼 저수지로 남아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낚시꾼들이 있다. 가끔 군부대가 야영숙영지로 이용하는 곳도 이곳이다.

계절적으로 갈대와 억새의 천지다.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밟히는 곳마다 예쁜 자갈들이 지천이다. 차가 다져놓은 길을 따르다 고운 모래가 지천인 곳에 이른다. 발에 전해지는 감촉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른다. 거기서 밤섬으로 길을 틀어 오른다. 환삼덩굴이 출렁대는 길을 만들어 내었다. 그 위로 조심스럽게 앞장선다. 긴 밭에는 실패한 얼갈이 배추가 널려 있었다. 다시 둑을 타고 오른다. 그제서야 예전에 몇 번 들렸던 이 섬의 전모가 나타난다. 여전히 느티나무가 재배되는 게 분명한 열식의 상태다. 이곳 느티나무의 단풍이 그려내는 먼 곳에서의 풍경은 가히 오래도록 기억에 둘만하다.

이곳에서의 느티나무 특성은 이렇다. 우선 지하고가 낮다. 아마 재배방식을 그렇게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는 지상부와 지하부가 대칭을 이룬다고 보면 간단하다. 그러나 모래가 주성분인 이 섬에서 지상부의 무게를 이루기에 지하부의 토질은 역부족일 것이다. 주근이라고 할 수 있는 직근의 발달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직근 역시 지상부 지하고 만큼만 자랄 수 없다. 그 안은 진흙이나 단단한 흙으로 직근은 옆으로 뻗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딱딱한 진흙층을 뚫고 가는 일보다 뿌리 활동에 수월할 것이다. 그러니 지상부의 지하고를 높이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곳의 느티나무는 특수목에 해당된다고 본다. 유난히 다간이 많다. 다간이 많다는 것은 직근의 수도 다간만큼 많다고 보면 된다.

정원조경을 하는 오브제프랜의 문소장님은 정원수로서 다간을 많이 이용한다. '다간이 얼마나 예뻐요?' 이게 그의 설계철학의 한 지경을 이루는 말이다. 예쁘다는 말에 다른 이론이 얼마나 더 파고 들 영역이 있겠는가. 그가 이곳의 느티나무를 보면 반해게 될 나무들이다. 그러나 뿌리돌림한 상태로 있는 노목들을 보면서 이곳 밤섬의 토양은 느티나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에 바람직한 토질이 아니라는 것을 단정지을 수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느티나무는 성장이 빠르다. 다른 토양에서 100여년 자라야 도달하는 수형과 크기를 이곳에서는 50여년이면 도달할 수 있겠다.  뿌리돌림한 후 나무 근원경 주변으로 폭넓게 나무뿌리의 기근이 숨을 쉴 수 있는 관을 뚫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토양이 답압에 의해 경화되었을 때 시공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만큼 모래땅임에도 불구하고 땅속으로 들어가면 매우 빽빽한 구조의 토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느티나무의 위용도 어느 정도 팔려 나간 셈이다. 다시 심은 느티나무들이 열을 지어 심겨져 있다. 예외 없이 느티나무의 주간을 지상 1.2미터 정도 아래쯤에서 잘라 몽둥이를 만들고, 거기서 나무줄기가 퍼져 자라는 재배방식을 선택한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지금은 15년 생 정도이지만, 앞으로 30년만 지나면 다시 100년생의 느티나무로 둔갑할 것이다.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저런 환경에서 자란 느티나무 대목을 도시 어느 한 복판에 심는다면 그 느티나무는 그때부터 몸살을 시작하여 수십년을 몸살 상태로 살아 갈 것이다. 조경의 초기 효과를 노릴 경우에는 사용할 만하겠다. 그러나 늘 고생하며 살아갈 나무임에 분명하다.

조금 지나니 골프장에 공급하는 벤트그라스를 재배하는 넓은 면적이 나온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이곳 남한강 주변에 만들어진 습지는 모두 큰 비 이후에 물이 잠겨 있게 된 곳이다. 바위늪구비가 그렇다. 예전에 이곳을 그저 남한강이라고 서로 소통되는 곳으로 보았던 내 시선의 잘못을 깨닫는다. 분명히 늪지이고 저수지이며 고립된 곳이다. 바위늪구비를 바라보며 멀리 보이는 능선의 산쪽으로 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주위 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입방체의 블록쌓기 구조체, 그리고 색상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가까이 바위늪구비에 다다르니 숨이 벅차다.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다 멈춘다. 그냥 바라보기로 결정한다. 사진은 다시 봐야 하지만 그냥 바라보는 것은 내면의 풍경으로 늘 볼 수 있다.

바위늪구비의 뭍쪽으로 갯버들이 군락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이 예술이다. 이 계절에 아직 푸른빛을 매달고 있다. 마치 예전 중학생들 까까머리를 바라보는 모습처럼 듬성듬성 아름답다. 학생들의 머리 위에서 보송보송 따뜻한 기운이 솟아오르듯, 갯버들의 머리에서 따스한 기운이 안개처럼 자장을 이룬다. 숨을 크게 흡하면서 호한다. 갯버들 아래로 청둥오리, 흰죽지, 비오리 등이 날듯이 유영한다. 바위늪구비의 뭍쪽이 이루어내는 경계라인을 설계에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CAD는 물론 스케치의 손맛까지도 숨을 멈추게 할 정도다. 자연이 만들어 낸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에 매료된다. 저기서 수많은 생명이 깃든다. 번식하고 일가를 이루고 떠나고 다시 찾는 곳이다. 물은 물대로 살아 흐르고 식물은 식물대로 자기 자리를 탐낸다. 새와 곤충과 미생물들이 환하게 웃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여주환경연합의 바위늪구비에 대한 관심과 키워드는 고맙고 훌륭하다. 밤섬만 기억하던 내게 이곳 바위늪구비는 앞으로 많은 관심으로 다가설 것이다. 자주 들릴 생각을 한다. 바위늪구비의 사계를 꼬박 마음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려면 내년 1년을 더 이곳에 있어야 할 것이다. 아는 것은 관심의 시작이다. 관심은 곧 자기 내면의 성숙과 연결된다. 큰 비에 담겼다가 물이 빠져나갈 때 거기에 남는 것들에게는 배려가 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는 것들은 아름답다. 서성대다가 묻히는 것이 인생사일지 모른다. 늘 예쁘고 아름다운 근처에 머물고 싶어하고 서성대는 것, 그래서 애환과 함께 오욕칠정이 생성되고 성장하고 소멸되는 것이다. 그래도 부딪쳐 그 안에 들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용돌이 치는 물속에서는 그대로 빨려들어가면 되고, 튕겨나와 빠른 급류에 이르면 몸을 맡기면 된다. 빨려들어가지 않으려,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늘 어지러운 것이다.


2008. 11. 08.

(한국주택관리신문,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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