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057-뇌성벽력

by 나무에게 2013. 12. 23.

청산교회를 다닌다고요? 어디냐 물으면 '청산'이라고 대답한다. 일요일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시작하니 지금까지 늘 교회나 성당 다니는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걷곤 했다. 그러니 그럴 만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꼭 그 시간에 그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생소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말이다. 시간은 불규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지,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조창' '청산은~'을 시작한 게 두 달 접어들고 있다.

절대 연습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니 연습하는 날 말고는 부르지 않았다. 저절로 익힐 수 있게끔 하지고 했다. 날로 먹는 게 아니기를 기대했다. 이제 많은 부분에서 날로 먹는 일을 하지 않는 셈이다. 더디거나 한참 돌아가더라도 숙성된 것은 체하지 않는 법이다. 어려서 잠깐 귀동냥으로 들었던 시조창이다. 시조창을 접하는 경험이라는 게 그저 아련한 옛 생각뿐이다. 그런데 우연히 인연이 되어 접하게 된다. 내게도 시조창을 부를 수 있는 근기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을 접었다. 저절로 될 때까지 애쓰지 않기로 한다.

나는 7주 만에 경험을 했다. 뇌에서 공명을 느낀다.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긋지 아니는고'에서다. 유수는에서 뇌의 공명에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몇 번을 참고 연습을 하다 연습 끝에서야 그 말을 했다. 그리고는 뇌성을 느꼈으면 벽력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면 벽력을 찾았다. 마지막 '만고 상청'하리라의 상청에서 벽력을 끊는다. 함께 연습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느낌이 있겠지만, 나는 뇌의 공명을 느끼는 시간만 되면 미리 몸이 떨린다. 물론 부르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다. 소리의 진도가 멈출 정도다. 유수느흔으은.....으흐은, 여기서 내 뇌에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길로 뭔가가 스윽~슥 지나가는 것이다.

두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뇌성이라고 할까. 아니면 새로운 공명, 즉 뇌의 떨림에 온몸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할까.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면 뇌의 공명 작용에 온몸이 절절매는 것은 분명하다. 마치 새벽 산행 시 반기는 바람이 나뭇잎들을 부시시 떨며 내는 공명의 느낌이다. 하나는 내 뇌 안에서 나는 소리이고, 하나는 바깥에서 나서 내 뇌로 스며 들어가 내는 소리다. 구멍이 송송 뚫려 그 구멍 속을 알 수 없는 바람들이 들락거리는지 모른다. 그 바람에 숨이 실려 있는지, 영혼이 함께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바람이 무척이나 신선하다는 것이다. 태초에 생겨난 바람의 맛이 이럴 것이다. 바람의 근기를 지녔다. 유수는...에서 더욱 그렇다.

2008.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