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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19.바위 병풍에 온화함으로 마주한 느티나무 - 태화산 백련사

by 나무에게 2014. 6. 9.



019.바위 병풍에 온화함으로 마주한 느티나무  - 태화산 백련암 / 온형근




바위와 느티나무가 만들어내는 평화는

태화산 백련암이 이제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익어 있음을 웅변한다. 대웅전에서 내려보고, 산신당에서 또 바라보았다. 어쩌면 대웅전에서 가장 알맞은 평화를 지녔다. 눈맛이 선해진다. 산신당에서는 멀리 층층으로 중첩된 산들의 장관에 가슴이 벅차다.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킨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 몇 백년 장수한 느티나무 아래 마을 어른들이 모여 여름을 슬기롭게 지내고 있는 풍경이 여전하다.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의 처녀는 캐묻지 말고 며느리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오래도록 마을이 존재하였다는 근거와, 몇 백년 마을이 있었다는 것은 예의규범을 갖췄다는 말과 다름아니니 되바라지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태화산 백련암이 그렇다. 깎아지른 산길을 올라 태화산 정상에 자리잡았으니 오르막 경사에 대웅전과 절살림이 가지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가파른 공간에 느티나무를 심어 땅의 기운을 백 년 넘게 다져 놓았으니 어찌 든든하지 않겠는가. 느티나무가 자라 하늘에 시각적인 테라스를 만들었으니 안정감이 바위로 쌓은 축성과 비교하겠는가. 느티나무 자체가 또 하나의 뜰을 이루었다. 유월이 빛났다.


일연선사가 주석한 사찰을 백련사라 한다.

점심 공양 후 주지 스님과 구기자차를 나누는 자리다. 하기야 가까운 백련암을 찾는다고 출발한 것이 광주 모현면 양벌리 백련암을 들렸고, 여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에 다시 광주 도척면 추곡리 백련암으로 돌아 온 것만 보아도 백련암(사)은 서로 가깝다. 거기다 에버랜드 위에 있는 용인 향수산 백련사까지 따진다면 일연선사가 한 나절씩 걸으면서 주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전국에 있는 백련암(사) 모두가 일연선사와 관련 있다고, 후세 사람들이 백개의 일연을 백련이라고 하였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은 공상일지라도 즐겁고 복되다. 그러니 망상은 아닐지다. 에버랜드 위 향수산 백련사를 방문하였을 때, 절의 전경을 가로막은 고시생 객사가 눈총을 주더니 이곳 태화산 백련암도 병풍처럼 드리운 바위의 기운이 고시생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 정상으로 거대한 바위는 특정한 기운을 찾는 이들에게 다양한 기운으로 공유될 것이 틀림없다. 누구 한 사람이 점유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윤택한 쓰임이다.


사람의 온기가 만들어내는 절간에는

편안함이 깃든다. 대웅전에도 상좌로 모시던 스님의 안온한 영정사진이 있고, 차를 마셨던 주지스님 공간에도 영정 사진이 몇 개 더 걸려 있다. 태화산 백련암은 주지 스님 혼자 큰 바위와 영험스러운 태화산 산신을 만나고 있지 않았다. 곳곳에 걸린 따스함 깃든 상좌 스님, 스승 스님, 스승의 스승 스님, 인간미 깃든 영정 사진에서 밤새 안녕과 온기가 함께 한다. 영정도 살아 있어 스님과 서로 대화하는 듯 하다. 백 살도 더 된 느티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이 사찰이 얼마나 결기 있게 등락했을까를 떠올려본다. 태화산 백련암을 오르는 길 바닥에 바위와 바위, 돌과 돌이 포개져서 흐를지언정 진창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힘들게 오르고 내리는 처사와 보살 또한 곤죽되지 않은 길을 따라 인연이 왔다가 가는지, 갔던 인연이 다시 돌아오는지, 가는 사람 붙들지 않고 오늘 사람 막지 않을 절길이다. 모든 생각들이 시원한 유월의 하늘을 향해 가득 들어찬 하늘의 난간뜰로 가득 차오른다. 거대한 병풍 바위의 오묘한 기운을 따라 흐르던 장군수는 수량이 많지 않았다. 바닥에 알을 까 놓은 듯 부풀어 오른 가라앉은 것들을 모두 치워내고 싶다. 아주 깨끗하게 청소하여 장군수가 보다 명징하게 보이게끔 관리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 또한 오고 가는 인연의 바퀴에 치여 한쪽으로 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