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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80-윤제림, 세 가지 경기의 미래에 대한 상상

by 나무에게 2013. 12. 23.

세 가지 경기의 미래에 대한 상상 / 윤제림

 

 

 올림픽 경기 중에 마라톤만큼 단조로운 경기도 없다. 신문 한 장을
다 읽도록 드라마 한 편이 끝나도록 같은 장면이다. 땀 얼룩의 일그
러진 얼굴과 뜨거운 대지를 두드리는 나이키 운동화 아니면 검은 맨
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경기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시 쓰기만큼 쓸쓸한 종목도 드물다. 시의
객석은 선수가족과 동창생들 몇이서 깃발을 흔드는 고교축구대회장
스탠드를 닮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경기의 미래를 의심할 필요는 없
다.

 섹스를 보라. 마라톤만큼 시쓰기만큼 단순하고 오래된 경기지만,
아무도 이 경기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외로우나 뜨겁기 때문이다.

<월간 우리시 2007년 2월호>

윤제림 시인 :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등이 있으며,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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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이 제천 출생이라는 것을 친하게 생각하며 읽어서일까. 그의 일상에서 기워 내는 시들은 알곡이다. 본류임이 분명하다. 나를 일상에 던져두면 샘처럼 깊은 이야기가 의미로 길어 올려 준다. 내가 읽은 이 시집의 톤은 단조롭다. 윤제림 시인은 불같은 정열을 지닌 채 만사를 단조롭게 만들어 내는 지휘자다. 그의 손짓 움직임에, 그의 시선 멈춤에, 그의 걸음이 방향을 바꿀 때, 그는 살면서 배인 몸의 진액을 뽑아낸다. 많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뜨거운 사람이다. 아니 뜨겁기 때문에 외로울지 모른다. 그래서 미래가 희망이다. 누구도 단순하고 오래된 경기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힘을 지녔다. 누구 한 명 거품 물고 당신 시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서 전화했다고 하지 않아도, 누구 한 명 멀리서 꼭 만나 뵙고 싶어 달려 왔다고 너스레를 떨지 않아도 쓸 수 있다. 나 역시 시의 미래를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캐스케이드처럼 시를 쏟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재춘이 엄마’는 윤제림의 시집, 문학동네에서 나온 [그는 걸어서 온다]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다. SK그룹의 광고 ‘당신이 행복입니다’ 어머니 편과 아버지 편이 있는데, 그 중 어머니 편 광고에 등장하는 시이기도 하다.
2008-04-21, (온형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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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택관리신문, 2010년, 2월호 원고 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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