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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가을이 함께 익어간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가을이 함께 익어간다 / 온형근




쑥부쟁이가 활짝 피었다. 양지 바른 곳에 심어야 뜨겁게 피는 꽃이다. 햇볕이 잘 드는 가을날 쑥부쟁이가 군락으로 피어 있을 때의 광경이란 장관이다. 물론 구절초도 마찬가지다. 구절초의 새하얀 고결미는 군락으로 모여 필 때 더욱 값지고 감동적이다. 아니 일반적으로 들국화라 부르는 감국, 쑥부쟁이, 구절초, 산국 등이 모두 모여 필 때는 볼만하다. 이른바 군락을 이룬다는 말이다. 군락을 이루는 식물의 자생지에서 장엄을 감지할 때가 많은 것을 보면 모여 군락을 이룬다는 것은 순결을 지키는 생명 활동에 다름 아니다. 사람이 군락을 이루면 예쁠 때보다 미울 때가 더 자주 발견되니 아마 순결에 흠집이 나서 그렇지 않은가싶다.


가을은 햇볕으로 무르익어 열매 맺는다. 가을 햇볕은 우주의 정수가 모여 이루는 기운이다. 식물을 비롯하여 생명 있는 모두에게 햇볕은 숨결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통과한 가을의 햇볕은 안온하고 따사롭다. 따뜻한 느낌에도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너무 뜨거운 여름에 쑥부쟁이를 보면 잎에 기운이 없고 시들하다. 온도의 변화에 나름대로 자신을 낮추어 쉬는 것이다. 빳빳이 세워 버팅기면 바쁘고 벅차 임계치에 도달하게 된다. 숨을 멈춘다. 잔뜩 허리 숙여 기더라도 작고 소중한 숨결을 보태야 한다. 이 또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직사 광선에서 기울어진 광선으로 만나는 가을 햇볕은 쑥부쟁이의 자주색 꽃 색깔을 은은한 기품으로 물들게 한다.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품격을 더 따졌다. 화용(花容)보다는 화품(花品)으로 우열을 가렸다는 말이다. 세종 때 시서화의 삼절로 불리던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을 정일품에서 정구품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 등을 1품으로 꼽았다.  모란, 작약, 파초 등은 2품, 치자, 동백, 종려 등은 3품, 소철, 포도, 귤은 4품, 석류, 봉숭아꽃, 해당화, 장미, 수양버들은 5품, 진달래, 살구, 백일홍, 오동, 감 등은 6품, 배꽃, 목련, 앵두, 단풍 등은 7품, 옥잠화, 봉선화, 무궁화 등은 8품, 금잔화, 해바라기 등은 9품이 그것이다. 안목과 상징의 해석에 의한 것이다. 가령 강희안은 흰색 꽃이 피는 흰진달래는 운치가 있다하여 5품, 붉은 꽃이 피는 진달래는 한 단계 낮은 6품으로 매긴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국화 전시회를 하는 곳이 있다. 농생명계열 전문계 고등학교이다. 이제는 그 역사와 전통의 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는 여전히 힘들지만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보통 10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전시를 한다. 전시하는 모든 국화를 재배 국화라고 하자. 재배 국화의 품종명은 매우 많다. 마치 열병처럼 국화향에 매달린다. 오래된 운치라 아니할 수 없다. 봄부터 쏟아 붓는 땀방울과 정성이 꽃 한 송이를 피우게 한다. 힘들고 참을성과 끈기를 요구하는 일을 회피하는 요즘, 국화를 기르는 오묘한 이치가 없다면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사물을 앞에 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꽃을 기르되 아름다움에만 빠지지 않고 꽃이 지닌 덕목을 살피는 것이다. 국화의  덕목이란 오래 참고 기다리는 마음, 변함없는 의리와 절개이다.


 

 


쑥부쟁이가 군락으로 피워 낸 꽃의 마음은 장엄이고, 일렁이는 물결이고, 가을 서정이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를 잃은 사람은 잠시 하늘나라의 신선이 되고 만다. 쑥부쟁이는 봄나물로도 향기롭고 맛있다. 자채라고 부른다. 새싹에서 뿌리 채 채취하여 봄나물로 이용한다. 뿌리는 지하경이 옆으로 뻗으면서 지하경 끝에 새싹이 나와서 번식된다. 순지르기를 하고 난 순을 삽목을 하여 길러도 그해 꽃이 핀다. 이러한 쑥부쟁이를 제대로 꽃피우게 하려면 키를 알맞게 하여 쓰러지지 않게 한다. 보통 줄기에 잎이 6-7매 정도 되었을 때, 3-4매를 남기고 줄기 순을 따 준다. 5월에서 7월 사이에 2-3회 정도 반복하면 잔가지가 많아지고 키도 알맞아 근사한 군락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 2006년 가을 갑자기 쑥부쟁이 군락을 만났다. 용인농업기술센터에서 개관한 '우리 랜드'다. 심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볼만하다. 여름의 눅눅함을 한꺼번에 털어내 준다. 2006년 9월 22일 용인시 농업기술센터내에 있는 '우리 랜드'에서 찍었다. 감성이 겨우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더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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