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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그때 그 옥잠화는

by 나무에게 2013. 12. 24.

 


옥잠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옥비녀 꽃이라는 말, 보름날 달빛에 호젓하게 만나야만 감동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옥잠화와 인연을 맺은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여주자영농고 부설로 지금의 농업경영전문학교를 만들 때로 돌아간다. 10여 년 된 이야기다. 그때 함께 근무하였던 사람들, 그리고 일을 즐기던 사람들이 관련된 이야기다. 너무 일찍 서둘러 일을 배웠고, 무지막지하게 일을 했다. 그때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나에 대한 기억을 저돌적이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어쩌면 세월이 달라졌다는 말로 더는 저돌적이지 말라는 말을 흘리며 돌려 말하는 사람들이다. 일이 즐거웠고 피하고 싶거나 꺼리거나 돌아가지 않았다. 바로 질러가는 길이 보였고,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도 그 일에 대하여 심사숙고, 고민해 보지 않은 적은 없다. 분명히 옳고 그름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협의하고, 시대적 현황을 끄집어내고 전망을 진단했었다.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새로 만들어지는 전문학교 조경을 맡았다. 내친김에 교사 현장연구 발표도 하였다. 물론 그때 나는 대학원에서 조경에 심취하여 있었다. 그 현장연구는 지금 생각해도 꽤 혁신적인 논문이었다. 지금까지 농업교사 현장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결과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끄트머리에 내 이름을 걸리게 한 논문이다. 전문학교 조경 계획 과정과 설계를 다룬 실질적이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과정을 논문에 제시한 것이었다. 지금 전문학교 운동장까지 당시에는 드문 개념인 야생화를 포함한 자생식물 체험 학습장을 소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 공원이 내가 학교를 옮긴  몇 년 후에 운동장으로 바뀌었다. 여주로 다시 돌아 왔을 때, 남은 것은 등나무 퍼걸러 근처의 소나무와 철쭉이었고, 본관 건물 주변 조경이 남았었다. 특히 그늘진 곳에 심은 주목, 구상나무는 변함 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물론 지피식물로 심은 옥잠화가 제일 반가웠다.

시절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여전히 나는 생색을 내는 일에 어둔했다. 다만 스스로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나를 숙성시키는 일에 대단히 만족하는 스타일을 굳히고 있었는지 모른다. 잠시 대학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팠고, 그러면서 강렬한 풍경으로 기억되는 일을 만난다. 관사에 살면서 늦은 시간 그곳, 달빛에 피어 있는 9월의 옥잠화 근처에서였다. 여주에서의 9년 근무를 씻은 듯이 맑게 다듬어 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기품 있고 은은하면서도 단아한 달밤의 옥잠화 군락을 만난 것이다. 옛 사람들은 뜰 가장자리 담장 근처에 옥잠화를 심고 그 청아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꽃의 옹골짐에 자신을 비추어 내일의 하루를 다잡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였을 것이다. 옥잠화가 잘 자라는 토질은 사질양토 및 점질양토이며 습기가 있는 토양이면 대부분 잘 자란다. 그러니 사계절 내내 그늘이면서 눅눅한 입지 조건에 옥잠화를 조경식물로 선정한 것은 제대로 식재 설계한 것이다. 사실 옥잠화의 식재 사례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책을 보면서 공부한 것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기막히게 입지 조건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얗고 기품 있는 옥잠화를 보면서 내 자신 기품 있어야 함을 다잡는다. 올해 조경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제자들을 배출해 내는 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을 씻는다. 혼자 고군분투하였지만 다시 마음을 잡는다. 대략 한 달여를 묘한 분위기에서 흔들렸다. 어느새 비슷하고 평균적인 교육에 길들어져 어려운 길을 개척한 것을 경계하고 있는지 모른다. 교육은 그렇게 묵묵히 제 갈 길을 치고나가며 매진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을 발굴하고 적용하면서 성취하는 실제적이고 역동적인 과정 속에 조경산업기사가 탄생된 것이다. 축하 파티는커녕 축하 인사도 제대로 못 받는 결과에서 잠시 머뭇댄다. 내가 옥잠화의 특성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책을 통한 과학적 사실을 진리라고 믿고 식재하여 오늘 저 아름다운 기품을 만났듯이, 최근에 나를 지탱해 준 힘은 교육의 절대 가치, 순수와 올바름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 부여인 것이다. 합격자에게 소찬을 대접하면서 '이렇게라도 해야 이 일이 마무리 되어 내 마음이 정리될 것 같다.'고 했다. 대접을 받아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한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또 하나의 길을 건너야 한다. 건널 강이 있으면 짐을 덜어야 한다. 가벼운 마음과 몸을 지녀 건널 준비를 해야 한다.

자주 옥잠화를 바라보며 역지사지란 말을 떠올렸다. 결국 옥잠화가 나를 다시 이 학교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시기와 질시의 세계에서 머무는 것보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길을 나서야 한다고 가르친다. 넋 놓고 옥잠화를 바라보다 꽃을 따서 말려 보았다. 그 차를 우렸다. 거의 백차에 가깝다. 그러나 향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향에 이끌려 비틀거렸다. 달빛차라고 이름 하였다. 내가 만난 달빛에 환한 꽃은 부추가 있고 메밀꽃이 있다. 부추꽃 역시 달빛에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한 꽃이다. 봉평 메밀꽃 또한 그렇다. 이 가을이 시작되는 이때, 나는 봉평 메밀꽃을 보러 나서려 한다. 오랜만에 오대산의 서주도 맛보고 싶다. 그것도 보름달 환한 날을 택하여 하루쯤 여행을 떠나듯 아주 소홀하며 느긋하게. 달밤에 보는 흰 꽃, 내게 어떤 에너지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달빛에 빛나는 흰 꽃에서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나의 안일과 평안보다는 나 아닌 이웃의 강녕과 평온을 생각해본다. 옥잠화가 달밤에 더 선명하면서 강렬하듯, 그 깊고 은은한 평온을 늘 지니고 떠올리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