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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by 나무에게 2013. 12. 24.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운림산방은 서 너 차례 다녀왔다. 갈수록 숲이 우거진다. 뭐라할까 정리가 안된 야생의 활력, 그런 인상이다. 반면에 잔디밭은 더 넓어져 보이고 훤하다. 매우 작위적인 관리 상태를 본다. 소치 선생은 추사에게 배웠다. 중국의 대치라는 호를 지닌 대가에 견줄만 하다고 소치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말년에 운림산방으로 돌아와 살았다.



이곳은 첨찰산이 있고 쌍계사가 있는 사천리다. 첨찰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내를 이루면서 사찰을 양편으로 흐른다고 해서 쌍계사라 했다. 마을 이름 역시 비껴가는 내를 의미하는 비끼내..빗기내..라고 부르다가 의역으로 사천리라고 했다 한다. 빗기내라는 말은 참 예쁘다. [비껴가는 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내가 비껴가는 곳에 삶의 터를 이루고 마을을 이룬 사람들의 지혜가 순정하다.

그래서인지 운림산방은 첨찰산의 천연기념물 상록수림을 가지고 있음에도 배수에 치중했다.


첨찰산에서 내려온 물이 집의 사방으로 물꼬를 트면서 연못으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다. 답사를 다니거나 남의 집 근처를 서성댈 때마다 나는 이 배수 관계를 살피는 습관을 들였다. 딱히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물의 흐름이 사람의 삶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물의 섭취와 물의 이용과 물의 바라보는 마음과 생각들이 모여서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일 수 있다. 그만큼 물의 흐름을 살피는 것은 내 몸의 건강을 살피는 것과 대동소이한 일이다. 

운림산방은 규모가 큰 연못이 있다. 방지원도의 형식을 지녔다. 그럼에도 호방적인 형태와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량이 풍부한 것을 보면 연못의 규모도 저절로 산정되어지는가 보다. 규모에 맞는 형태와 크기가 결정된다. 연못 주변의 호안 처리도 견고하다. 전체적으로 식물이 무성한 편이다. 가운데 섬에 있는 배롱나무의 꽃이 만개할 때쯤이면 이곳은 무릉도원을 방불케 할 것이다. 이곳에서 영화촬영을 하였음을 알리는 푯말을 보았다. 소치 선생은 허락했을까? 물론 소치 선생이 처음 이곳에 들어와 살았을 때와는 형태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소치의 스승이신 추사 선생의 71세로 봉은사에서 떠나기 직전 두 세 달 전 절필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이다. 해석을 하면, ‘두부에다 오이, 생강, 나물이 최고의 요리이고, 아들, 손자, 며느리 모인 것이 가장 우아한 모임이다. 이것이 필부의 낙이라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요즘은 어떤가? 먹는 것은 고기 일변도이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있는 날들이 일년 중 몇 일이나 되는가. 그러고 보면 가까운 곳에 인생의 심오한 철리가 있다. 쌍계사 뒷쪽 돌쌓기 축대 주변으로 무심한 듯 심어진 머위를 보면서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머위나물을 유난히 좋아한다. 껍질을 벗기다 보면 손에 물이 들어 오래가는 게 흠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서 오래도록 체험의 기억으로 남는다. 머위를 다듬는 일에는 어머니가 계시고, 아내가 있다.

대가의 역동적인 삶 속에서 마지막 언표가 가장 가까운 삶의 모습에 담겨져 있다. [대팽두부과강채], 내 식성을 닮아 있다. 여름 8월23일 횟집에서 손이 가지 않아 물만 마시다가 전어 몇 저름 먹은 것이 이튿날 병원에서 간수치 8,000을 이틀동안 내리 오르락거리며 요단강 근처에서 서성댄 것을 보면 아찔하다. 그날도 나는 청국장이나 먹었으면 했는데, 대접하는 사람은 근사한 대접으로 횟집을 안내했던 것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일어서야 할 자리라면 박차고 일어나야 할 일이다. 두부를 비롯한 콩요리가 좋다. 거기다가 몇 가지 나물이 곁들어지니 이루 말할 필요가 있을까. [고회부처아녀손], 가장 고귀한 만남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세속의 숱한 기운들이 안정적이고 따스해지는 자리일 것이다.  

운림산방이라는 이름처럼 첨찰산도 잠겨 있다. 마침 첨찰산 쌍계사에 오르니 우화루의 이름이 정직하다. 비꽃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루의 풍경이란 의식의 향방을 쉽게 여미게 할 것이다. 더구나 사찰 뒤의 공간에는 머위를 심어 관상과 나물로 이용하고 있고, 비닐하우스에서는 자급자족의 여건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끔 흐뭇하였다. 추사 선생이 말년에 쓴 두 작품의 의미가 소치 허련 선생의 운림산방을 비껴 자리한 쌍계사에까지 의미심장하게 번져 있다. 가장 맛있는 진수성찬과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되돌아 보게 한다. 



목이 땡기고, 어깨가 빠질 듯 아프다. 사진을 만지는 일이 너무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앞으로 나는 [텍스트쟁이]로 살고 싶다. 사진은 더 이상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노구를 이끌고 사진까지 만지려니 온갖 질병이 다 달려붙는 듯 하다. 마음은 청춘인데...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은 역부족이다. 답사 사진도 그만 찍고 싶다. 철저히 [텍스트쟁이]로 버틸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까지 진지하게 떠 올리는 것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생각같아서는 답사보고서를 매일 한 개씩 쏟아내려고 하였는데..이렇게 사진까지 고려하다 일주일이 후딱 지났다. 만일 사진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일단 이 글을 마친다.

사진에 공을 들이고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텍스트까지 끊긴다.

가끔씩 책을 보니, 글을 쓰는 사람 따로 있고 사진 작가가 그 글을 읽고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 글 아무개, 사진 아무개 등으로 나오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뭐 저러나 싶었는데...무릎이 쳐진다. 그렇다. 이유가 분명하다. 내가 지금 그 심정이고 경지에 있다.

[석류의 계절]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흥얼거리던 노래다.

그 음률이 흐른다.

운림산방 근처에서도, 소쇄원에서도..

나는 꼭 석류가 활짝 피는 계절에 이곳을 지난다.

그러나 석류의 계절에서처럼 석류가 익을 때 이곳을 다닐 인연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