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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그 환상의 걷기_완도 수목원

by 나무에게 2013. 12. 24.

그 환상의 걷기_완도 수목원 / 온형근



나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된다.
염선생도 가끔 이 나이라는 말을 두둔한다.
나도 몇 번 써 보지만, 꽤 괜찮은 말이다.
상황마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근엄한 맛과 뭔가 인생의 깊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듯 해 보인다.
[보이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곱게 늙어야 한다는 말은 곧 [보이는 것]에 다름아니다.
산책을 하는 일과 걷기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꽤나 더디고 부하가 걸리며 완력이 요구된다.
그러면서 끝없이 걷기의 연속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산책이 아니라,
적절하게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하는 걷기의 노정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차분하게 할 수 있었던 곳 그곳이 완도 수목원이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남쪽 나라의 기후는 사람의 심성을 촉촉하게 하였다.
예전에 다랑쉬에서 수목원을 주제로 답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완도 수목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탐방로를 따라서 사진을 찍고 열심히 걷기를 했다.
그러면서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자체에 대하여 꺼려했다.
답사도 아니고, 사진기도 없고, 산책도 아닌,
그야말로 순전한 걷기이기를 바랬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걷기의 현현이다.
걷다가 어느새 나이 먹어 있으면 된다.
곱지 않으면 또 어떨까 싶다.
갑자기 탐방로가 끊겨지는 길에서 다시 길을 내면 된다.



계곡물이 있고 곳곳에 데크가 만들어져 사람의 발길로 길이 확장되는 것을 방지한다.
우리나라에서 난대림을 대표할 수 있는 여건, 그것은 온화한 기후, 일교차가 적으면서 비가 많이 내리는 그러한 곳, 완도가 그 중 하나이고, 그곳에 완도 수목원이 자리한 것이다.
다들 완도 수목원의 깨끗한 공기와 환경에서 숨을 몰아셨을 것이다.
그 감사한 마음들을 드러내고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잘 갈무리하였을 것이다.
완도 하면 떠오르는 청해진, 장보고, 뭐 그런 꽤 웅대한 생각들이 스친다.
배를 타야 하는데, 막걸리를 먹어야 한다고 죽치고 있었다.
배는 뱃고동을 울린다.
 

몇 몇이 이쪽을 쳐다본다.
천천히 걷다가 조금씩 달린다.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느낌을 어쩌지 못한다.
중국에서 카메라를 찾으러 다니느라 비행기 이륙을 늦추었던 그 미안함처럼,
완도 수목원에서 더 머물지 못한 아쉬움이 뱃고동 소리에 감춰진다.배는 지나간 자취를 지우며 보길도를 향하고 있다.
조금씩 속이 울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