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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무제치늪과 기청산식물원

by 나무에게 2013. 12. 24.
2000. 9. 2 ∼ 3 : 제4회 답사
- 장 소 : 무제치늪, 경북산림환경연구원, 기청산식물원
- 참석인원 : 온형근, 정명렬, 안행준, 염충, 이영(참관인), 김현근(안내)
세월은 없는 듯 그렇게 흐른다. 책상 위에 오래된 수첩이 있어서 들춰냈더니 2000년도의 수첩이다. 그렇다면 내가 수원으로 옮긴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이다. 다시 용인을 거쳐 여주로 되돌아 있는 시점에서 이 수첩을 만난다. 그때 만난 이영님은 참관인에서 회원으로, 결혼까지 한 사람의 인생의 변화가 뚜렷하게 매김질 되어 있다. 그 세월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수첩의 첫 마디는 이렇다.
"(9.2)
도처에 적의가 숨어 있다.
출발의 어깨, 늘어진 가슴앓이.
일상에서 일상을 나서니 다시 일상에 묻힌다.
뜨거운 날씨, 젖은 몸, 밀리는 차창 너머 또 다른 일상들이 굼뜨게 허리를 편다.
프랑스군 참전기념비의 통유리 화장실 외벽으로 물이 쏟아진다.
자꾸 출렁이는 버스에는 뇨기조차 해결 못한 토요일의 바쁨과 사람들의 짜증이 녹아 있다."
이때 내 가슴에는 정호가 가득했다. 병원에 함께 가서 상담과 치료를 결심하던 때였다. 그런 정호가 이제는 4학년이다. 답사 메모에 저녁 잠자리에서 아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적혀 있다. 그러다 새벽비 소리에 깨었다는. 그런데 '이민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라는 메모는 뭔가? 아마 염충 선생이 뭔가 내가 지니고 있는 생각들의 바다에 들어왔었나 보다. 그리고는 무크지를 만들 계획을 나누었다. 이때의 다랑쉬는 진취적이었고 긍정적 진행형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답사에 지쳐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타성이 자라고 있다. 답사 때마다 이 타성을 줄일 수 있는 자발적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느낌 조차 꿀꺽 삼킨다. 이조차 타성이다. 그만큼 사람이 좋다. 사람들이 좋다.


[사진 : 우제치늪에서 아마 이영씨가 내 사진기로 찍었을 사진, 이때는 참으로 다들 젊었다.]

무제치늪, 아마 우산을 삼삼오오 들었을 것이다. 정족산 대성암이라는 바위로 만든 암자를 만났다. 대성암 아래 약수터에서 물을 마셨다. 비오는 산사에 불을 피웠고, 그 향이 산사를 울리고, 연기가 안개를 몰아내었다. 무제치늪에서 찍은 사진들은 어더 있는지 찾지 못한다. 고원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물봉선, 모싯대, 꽃향유 등이 양지쪽 산자락에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산림환경연구소 포지를 둘러보았다. 이때 이영씨가 내 수첩에 사진 컷마다 메모를 해 준 것이 보인다. 그 조심스런 필체가 수첩에 적혀 있다.



" 맨드라미, 백일홍, 두메부추, 꿩의비름, 옥잠화, 박하, 미역취, 조밤나무, 흰꽃나도사프란, 오랑캐장구채, 풍선덩굴, 노란맥문동, 머위, 맥문동구획, 모시풀, 타래붓꽃, 참취, 가락지나물, 벌개미취, 차즈기.."



이때 내가 생각한 메모에는 이런 것들도 있었다.
1. 식물원 조성의 교육적 과제 및 의미, 활동
2. 공기업의 식물원 조성을 통한 사회교육적  전망
3. 사례연구 : 공동과제
4. 테마가 있는 소규모 전문식물원 조성 기법
5. 식물원 탐사 방법
그렇게 무제치 용늪을 다녀오는 길이었고, 크게 보아 경주 중심의 답사이다. 기청산식물원도 그때 만났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했던 분이기도 하다. 두 개의 슬라이드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강의해준 고마움을 아직 지니고 있다. 내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는 것을 보니 꽤 열심히 공부한 셈이다. 아니면 그 당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생각들과 많이 코드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나는 꽃 중에 꽃으로 통으로 용감하게 떨어지는 자생꽃을 마음으로 지녔다. 오래 달려 짓물리면서 떨어지는 꽃을 가장 추하게 보았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다. 그런 개인적 심상을 기청산식물원에서 확인한 셈이다. 꾸미지 않는 삶을 꽃에 투영한다.

참나무류 중에서는 졸참나무 단풍이 가장 아름답고, 도토리도 제일 작다. 하지만 가장 맛있다. 상수라는 것은 수라상에 올라갔다는 말이다. 참느릅나무는 농을 제거하는 데 좋다. 생성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새 살이 돋는다. 참느릅나무 수제비...하는 메모에 오래 머문다. 그러면서 낙우송 군락지에 낙우송의 기근을 보았다. 그 다양한 기근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사진을 찾지 못했을 뿐, 뇌리에는 아직 그 4회 답사의 정경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 경관을 경영한 사람들.2 의 답사에도 오래도록 뇌리에 정경들이 남아 있을까? 운림산방, 세연지, 그리고 낙서재와 동천석실, 미황사, 소쇄원...웬지 정총무님의 쓸쓸해 보였던 이번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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