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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균형과 평형이 있는 북한산

by 나무에게 2013. 12. 24.
술을 마시면서 술 마신 이후를 생각하는 것은 나이 든 연유에 기인한다. 그 고통스러움을 알기에 술에 가까이 가는 행위를 줄이는 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 원칙을 나름대로 고집한다. 막걸리여야 한다는 것. 1차에 한하여 마신다는 것. 대화가 늘어지거나 길어지면 잠을 잔다는 것. 등이다. 앞으로 이 원칙은 고쳐지고 없어지고 새로 생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보름 정도만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내도 마치 사육되는 기분이 든다. 때 되면 먹어야 하는 게, 그리고 때 되면 자야 하는 게, 왠지 거부감이 치미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잡인 출입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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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 금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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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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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내 경우에는 그렇다. 컨디션이 너무 좋으면 두렵다. 적당히 망가뜨릴 필요가 있음을 자각한다. 그럴 때 술을 마신다. 술 마실 때의 기분 좋음을 위함이 아니라, 술 마신 이후의 불쾌함에서 비롯되는 몸의 망가짐과 재생에 관련된 일련의 자각을 알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더 없이 겸허해지기 때문이다. 겸허해진다는 것,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고의 과정에 의해서 나는 지금부터 겸허해질 것이야. 라고 다짐해 보지만 바르지 않다.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편하지 않으면 어쩜, 그리 쉽게 겸허해지는지 모르겠다. 몸 사리는 동안 마음도 정신도 영혼까지도 겸허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실망스럽게 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프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배부른 영혼을 지녔기에 제멋대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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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사용하는 일에 더 극성을 부리려고 한다. 몸을 사용하는 일은 묘한 순환 고리를 지녔다. 땡볕에 쪼그려 풀을 뽑아 본 적이 있는가. 그 쏟아지는 햇빛과 움직일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굵직한 땀방울의 행진을. 삽을 들고 나무 캐 본 적이 있는가. 어떤 목표를 향하여 줄기차게 대들게 되는 사람의 목표지향성에 온 몸이 걸레처럼 구겨지고, 이게 펴지면서 경험하는 짜릿한 고통들의 내면을 나는 안다. 그런데 이런 [삽질]의 일을 대하면 몸에서 막걸리를 요구한다. 몸이 막걸리를 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몸 상태가 지극히 평화롭고 안락하며 신선 모드로 전환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원하는 대로 막걸리를 마신다. 적당히 마시면 좋은 데 항상 조금 더 마신다. 그래서 다음 날 몸은 다시 겸허해진다. 새 시집을 내기 위해 모아 둔 시 중에서 이런 근성을 써 놓은 게 있다.

[바닥을 차는 일 / 온형근]
바닥을 차는 일이라 한다 깊게 빠져들었을 때 흙냄새를 맡고 거뜬히 솟아오르는 씁쓸한 입맛을 모르고서야 곰삭은 영혼의 바다에서 어디로 갈까를 상처와 함께 지녀보지 않고서야 내 몸 던져 영혼을 지키려고 하는 이글대는 불꽃이어야 그리하여 시인은 박차고 일어나는 도반이다 뜨거운 유월의 햇살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종일 밭풀을 뽑아도 찜질방은 기웃대지 않는다 우물쭈물 표류하며 방향 없이 세월에 기대어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기우뚱거리다가도 한꺼번에 진기를 끌어올려 반듯해진다 시인에게는 바닥을 차는 기운이 있다 근성이라 불리는
(온형근, 미발표 시, 바닥을 차는 일, 전문)

이런 식으로 몸의 순환 고리를 파악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그런데 시중에서는 알콜 중독 증세는 이렇고 저렇다고 제멋대로 규정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의 위대함에는 중독이 내재되어 있다. 그 중독을 병으로 이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희망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에서의 답사내내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오르고 내리는 일이 산행이라면,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하나의 중독이라고 말이다. 그 풍경에 중독되어 산행을 하는 것이다. 만약 산행이 산에 오르는 일이기만 한다면 그것은 산행이라 일컫지 못한다. 산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산행은 산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일까지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나오는 것을 전제로 한 행위가 산행이다. 북한산에서의 몸의 고달픔은 다랑쉬의 미래에 대한 자연스러운 합의를 도출해 내는 힘을 지녔었다. 산에 들어서 힘들었던 사람들이 산을 내려오면서 다랑쉬라는 산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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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북한산을 오른다. 살면서 맺게 되는 갖가지 모임과 인연들이 산에서 만난다. 그들도 산을 오르면서 공유하는 힘든 일정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나눈 적이 있는가. 힘들었지? 그렇지? 참 좋은 풍경이다. 숨을 헐떡이며 나누는 이런 행태가 풍광이 멋들어진 국립공원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다. 적당히 힘든 굴곡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균형자가 있고, 평형 상태를 맛볼 수 있다. 다랑쉬의 미래가 그렇다. 평이하거나 진부하다면 미래가 없는 단체가 된다. 고통스러운 일이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은 힘든 몸의 사용 이후에 나타나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머리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너무 행복하여 망가질까봐 다시 술을 마시면서 평형을 지니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해롭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우리는 편향된 사고를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피를 나눈 가족에게도 평형의 오르 내림은 필요하다. 복에 겹거나,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 한 쪽 귀퉁이를 깨부술 생각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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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는 복에 겨웝다. 독립영화를 보게 된 것도 그런 복 중에 하나다. 존 시간이 더 많았지만, 졸면서도 꿈을 꾸듯 그 영화 속에 나는 갇혀 있었다. [풍경의 분별]이란 내 시집에 [로드 킬]이란 시가 수록되어 있다. 아직 출판하지 않았지만, 출판 준비 중이 시집에도 이에 관련한 시가 하나 있다. 이 시는 2006년 11월 29일 명동성당에서 개최되는 생명평화결사의 문화마당에도 소개된다. 탁발시집 [바다가 푸른 이유]에 실려 있는 시이기도 하다.

[고라니 고속도로-흙07 / 온형근]
청주에서 목천 사이 경부고속도로
편도 3차선, 한 차선만큼 폭을 지닌 갓길에
이제 막 뛰는 것에 익숙해진 토실토실한 고라니
두 발이 짝으로 펼쳐진 채
땅 바닥에 닿은 등선은 가드레일을 향해 나란하고
오장육부 퀭하니 터진 채 뚫려 여름 습기 쏘인다
지나는 차량 어디에도 피 흔적 남아 있지 않아
고속도로 양 언덕의 녹음은 숲을 이뤄
숲길은 갈라져 개별의 산길로 접어든다
고라니만 저 산과 이 산을 잇고 싶었을까
무심하여 슬퍼진 건 우기의 녹음
천차만별의 생각을 실은 채
출발지에서 도착지만을 응시하는
고단하게 질주하는 사람 닮아 있는 승용차와
개별은 차별이고 차별은 일체유심이지 않아
길보다 고라니 사체가 더 길고 커져 있어
내 눈과 마주친 까만 눈동자가 깊고 그윽하다
고라니 사체가 눕기에 저 땅은 너무 딱딱해
(온형근, 미발표 시, 고라니 고속도로, 전문)
써 놓은지 오래되었지만, 출판에 앞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생명평화의 푸른 바다에서라는 문화마당 행사는 다음과 같다.

“생명·평화의 푸른 바다에서”
생명평화결사 100배 서원음반 <온숨> 제작발표회
생명평화탁발시집 <바다가 푸른 이유> 출판기념회

1. 일시 : 2006년 12월 29일(금) 저녁 7:00-9:00
2. 장소 :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
3. 주관 : 생명평화결사
* 음반참가자 25인
권미강 김갑숙 김강재 김경일 김도원 김민해 김여진 김원중 김유철 김전일 노헤레나 박두규 박소정 박진영 서은라 성정현 신희지 (이민철-불참) 이병철 이홍덕 장도현 정해숙 최명진 황대권
* 시집참여시인 64인
강영환 권석창 고증식 고재종 곽재구 김기홍 김수열 김만수 김영석 김용락 김용택 김은숙 김인호 김재홍 김정희 김종인 김태수 김해자 나희덕 도종환 동길산 문창길 박금리 박남준 박두규 박래여 박일환 백무산 신진 서수찬 손세실리아 안도현 안상학 이응인 안준철 양문규 오용기 온형근 우미자 유승도 유용주 윤정구 이병철 이상인 이수호 이원규 이정록 이종암 이중기 이상국 정성수 정세훈 정안면 정일근 정용국 정태춘 조명 조성래 채정은 최춘희 최영철 함순례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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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고속도로] 외에도 몇 편 더 실렸다. 생명이 주제가 되는 시를 달라고 했는데......내 시는 이런 주제가 꽤 많이 다루어져 있는 셈이다. 청탁을 받고 써 낸 시가 아니라 내가 써 놓은 시를 골라 준 것이다. 내가 넘겨 주고 나서 호평을 받았던 시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제법 이 시대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시인들 틈에 슬쩍 끼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연말 총회에 시집을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해를 넘겨야겠다. 이번 시집은 회원들이 더 많이 구입하여 주변에 뿌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답사 보고서를 쓰는 순간 연말 총회에 대하여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연말이 다가 왔음을 깨닫는다. 또 한 해를 닫아야 한다. 올해 다랑쉬는 어쨌던가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검토하고 정리해야 할 것이다. 정말 다랑쉬 다운 한 해를 살았는가를 돌이켜 볼 일이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다랑쉬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연말 총회에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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