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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강진만을 사이에 둔 세월

by 나무에게 2013. 12. 24.

2006/08/28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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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과 백련사, 그리고 고산 윤선도 고택. 이렇게 이어지는 강진만을 사이에 둔 세월을 읽는다. 다산은 많은 글에서 외가를 자랑한다. 고산의 증손이 공재 윤두서고 공재의 손녀가 다산의 어머니시니 다산에게 고산은 외가쪽 6대조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공재를 비롯하여 고산의 해남 윤씨들은 그림에 남다르다. 다산은 '3대'에 걸쳐야 전문가이며 월등한 예술이 태어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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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답사한 곳 중에 하나가 윤고산 고택이다. 맨처음 윤고산 고택에 들렸을 때는 모든 게 장관이었다. 연못, 사랑방인 '녹우당', 그리고 나중에 만들어진 '박물관'까지. 해남 윤씨의 부인들이 전쟁과 각종 난리에 그 많은 자료들을 항아리에 묻어 숨겨 놓고, 찾아 빛내고 했다는 이야기 쯤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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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에도 종손은 아니지만, 그 막내 되는 분과 함께 다녔는데.....그 분이 직접 한 말이 인상적이다. 여전히 '여성'들이 입김이 세다는 것이다. 남다른 자부심과 부지런함을 지닐 수 있는 풍수적 기운을 지녀서일까. 종부라는 명칭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참여 정부 들어 전국의 내노라는 종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뭔가를 이야기 나누었다는 것만 상기하여도, 이제 어느 집안이든 종부의 위치 자체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게 분명하다. 종부는 과거와는 또 달리, 함부로 가타부타 관여할 수 없는 집안 내의 실질적인 권한을 지녔다. 종부로서의 주어진 일 자체가 이미 다른 식구들에게는 넘겨 볼 수 없는 커다란 산이다. 감히 넘보거나 어찌 해보려는 듯 깐죽거릴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화살촉이 되돌아 올 확률이 크기 때문일까. 날아가는 화살이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 오는 아찔한 상황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쩐지 종부를 떠받들어 순한 화살로 넘나들기를 기대하는 게다. 어느 집안이나 여자들이 알차고 실하여야 번성한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강진 윤고산 고택을 모르지 않는다. 살아있는 풍수의 교과서라고들 한다. 좌청룡 우백호의 현현이다. 하얀 연꽃이 피는 마을이라 처음에는 백련동이라 했던 것이 지금은 연동이라 불리는 이곳, 조경적으로는 녹우당과 고택 입구의 연지와 비보림이다. 연못에는 백련이 심겨져 있다. 풍수적으로 허한 앞 부분을 비보하기 위하여 해송으로 비보림을 삼았다. 안산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연못 부분의 비보가 기막힌 구도인 셈이다. 그림에 눈동자를 찍는 것이라 비유해도 마땅할 그런 조치이다. 화룡점정과 다름 아니다. 어쩌면 이 비보림이 해남 윤씨들의 동족 마을을 지켜온 것은 아닐까. 한 집안에서 노비문권, 은사첩 등 국가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500여년 이상 지켜 내려온 연동 마을의 해남 윤씨들의 변하지 않는 사명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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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을 둘러본다. 한마디로 녹우당 마당의 공간 처리에 고개를 돌린다. 녹우당의 전체 크기에 비례하여 마당에 심겨진 꽝광나무 2그루는 너무 크다. 비례가 이그러진 셈이다. 마당 한 쪽 가장자리에는 방지 연못이 있다. 이곳도 물은 사라졌다. 돌틈에 심어진 식물도 지나치게 자랐다. 전체적으로 방치된 흔적이다. 식물이라는 것이 그냥 두면 자란다. 그냥 두는 것이 유적지에서는 가장 중요한 출발일 것이다. 그런데 식물은 다르다. 처음에 식재할 때, 이 나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를 가정하고 심는 것이다. 그러니 그 크기에 이르면 적당히 크기가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 유지 관리의 문제다. 꽝꽝나무의 크기는 녹우당을 1.5배 정도 더 크게 개축하여야 할 비례다. 건물을 개축할 수 없을테니, 꽝꽝나무의 크기를 비례에 맞게 줄여 주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조경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다. 해당 자치단체에 속해 있는 대학의 '조경학과'에서 이런 일을 꾸준히 제공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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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윤씨는 어초은 효정을 시작으로 어초은파가 시작된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서 머물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연지이다. 백련이 한창이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곳곳에서 소요한다. 왕버들이 잘 자랐다. 왕버들은 도연명의 오류선생전에 나온다. 옛 선조들은 도연명의 오류선생전에서 연못 주변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 남쪽 지방에는 왕버들이 그것이다. 남원의 광한루에도 왕버들이 많다. 다만 중부이북지방에는 왕버들이 되지 않아 버드나무로 대신하기도 한다. 오류선생전에 보면,

先生不知何許人, 亦不詳其姓字, 宅邊有五柳樹, 因以爲號焉.
선생부지하허인, 역불상기성자, 택변유오류수, 인이위호언.
閑靖少言, 不慕榮利, 好讀書, 不求甚解, 每有意會, 便欣然忘食.
한정소언, 불모영리, 호독서, 불구심해, 매유회의, 변흔연망식. 이란 말이 있다.

"선생은 어디쯤의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그 성명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으니, 그것으로 호(號)를 삼았다. 한가롭고 조용하여 말이 적었으며, 명예나 실리를 바라지 않았다.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매번 뜻이 맞는 글이 있으면 즐거워하시며, 밥 먹는 것도 잊곤 하셨다."

그런데 고산 윤선도 유적지의 연지도 변하고 있다. 조경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 연못 주변에 왕버들까지야 아니더라도, 주목을 심어 둔 것이 참으로 못마땅하다. 어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종손에서 심었을까. 자고로 유적지 주변에 그것도 연못 둑에 주목을 심어 둔 것은 보지 못했다. 주목 자체가 생육이 좋지 않다. 생육에 적합한 곳이 아님은 물론이다.  주목은 생육지와 잘 맞을 때 주목 자체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생육지와 잘 맞지 않을 경우 주목처럼 보기 싫게 억지로 자라는 나무도 드물다. 실제로 연동의 연지 주변에 심은 주목은 억지로 근근히 간신히 명을 유지하고 있다. 500여년이 넘도록 유지된 그 생명력과 풍수와 기운을 사소함으로 훼손시킬 이유는 없다. 속히 정비하여야 할 문중의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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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윤씨 고택 입구에서 예전에는 나무가 작아서 보이지 않던 것이었는지. 입구에 삼나무가 엄청나게 컸다. 삼나무보다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하는 측백나무 같은 것이 길 양편으로 심겨져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한 쪽 길 가로 삼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졌다. 어초은 선생이 심은 비자나무 숲은 지금도 자랑스럽고 보물이다. 문중에 의미가 있는 비자나무를 길 양편으로 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비자나무는 어려서 음수라 늦게 크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 원산인 삼나무를 유적지 입구에 심어 두는 것은 거슬린다. 삼나무가 남부지방에 잘 자라는 탓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유적지라는 것은 당시를 거슬러 올라가 선조들의 호흡과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조경 수목의 선정 역시 그 당시의 흔한 나무들이 심겨져야 할 것이다. 은행나무는 얼마나 우람하고 잘 자랐는가. 해남 윤씨 문중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밭 가장자리로 심어진 삼나무는 어떤 의미를 두고 심은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심게 된 나무일 것이다. 유적지의 나무를 선정할 때에는 한번 더 숙고하고 자문을 받아, 유적지 다운 경관이 되게끔 심도 있게 논의할 일이다.

유적지 관련 사업마다 건축가나 사회학자, 역사학자 등 관여하는 사람들과 분야도 다양하지만, 왜 조경전문가가 참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다. 경관은 조경에 의하여 좌우 된다. 유적지의 경관을 생각한다면 조경 전문가, 그것도 한국전통조경 관련 전문가를 참석시켜 사업을 시작하여야 한다. 시작한 후에 참여하는 것은 또 한번 경관을 망친 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조경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방침을 강구하여야 할 일이다. 모든 학제가 관련된 학문과의 연계를 필두로 이루어지고 있는 차제에, 조경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을 저절로 눈 감고 넘기려 하지 않아야 한다. 나누고 나눈 역할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하는 신중한 관계를 형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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