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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겨울 바람 앞에서도 바스러지지 않을 튜립나무

by 나무에게 2013. 12. 24.

 

 

 

 

 

튜립나무 또는 백합나무라고 한다. 한 겨울까지 습한 것은 모두 빼 내고 바짝 말라 있다. 꽃이 필 때는 백합을 닮아 있는 연노란 꽃이 봉긋하게 매달려 있다. 모든 게 그러하지만 이 나무의 꽃은 관심 없이 도저히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고 은근하다. 더군다나 이미 나와 있는 나뭇잎에 가려 뽐내려해도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다. 백합나무의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연한 색상에서 번지는 고운 심성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곱고 정갈한 꽃이 수분에 성공하여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기어코 열매를 터뜨리고, 숱하게 많은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멀리 비행을 하기 시작한다. 가을 바람과 겨울 바람 앞에 이리 저리 쓸려 가면서 씨앗들은 길바닥에 몰리기도 한다. 좋은 밭에 떨어지면 싹이 튼다. 일부러 파종하여 가꾸는 방법도 가능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무 꼭대기 높은 곳에서는 여전히 열매가 터져 있고, 바람은 그 터진 열매를 바스러질 때까지 말리고 있다. 더 떨어질 씨앗이 남아 있지 않건만 습한 것을 용서할 수 없어 아직도 말리고 있다. 나무 줄기 역시 많이 터져 있다. 겨울 추위에 너무 노출되었다. 그러니 겨울눈은 장하고 대견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만들어내는 튜립나무의 잔가지와 아직 열매 껍질로 남아 뭉툭해진 풍경이 제법 넋 놓고 오래도록 쳐다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좋은 나무의 미끈한 키 위로 하늘이 근사하다.

 (2009. 08. 13. 온형근)

[한국주택관리신문 2009년 10월호 원고 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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