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공진화-共進化

by 나무에게 2013. 12. 24.

공진화-共進化 / 온형근



답사를 2박3일로 정한 것은 1박2일이던 답사의 첫날이 모이느라 소비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말하자면 답사의 내용적인 진화다. 더군다나 주5일제의 도입에 따라 보다 자연스럽게 논의된 내용이다. 2005년 3회 답사를 2박3일로 잡아, 첫날 모이는 시간으로 활용하였다. 첫날은 숙소인 청태산휴양림에 도착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전익요씨와 함께 분당에서 만나 출발한다. 답사의 진화에 관련된 몇 가지 실험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다. 답사지의 수를 줄인다. 첫날은 양떼목장과 대관령 삼양 목장, 그리고 오대산 상원사 및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까지 오르고 내릴 정도로 답사는 차분하다. 자연자원이 사람들의 여가 문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양떼목장과 삼양목장을 찾는다. 입장료도 장난 아니다. 자연자원에서 이루어지는 여가 활동도 다양하다. 사진 출사를 나온 사람, 네발오토바이로 진흙길을 달리는 팀, 참으로 다양한 항로를 지녔다. 이 모든 것이 뭉쳐 이루어지는 활동인데도 자연자원의 수용은 우호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그만큼 용량이 크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망가지고 있는 것은 진행형이다.

첫날은 그렇게 답사를 다녀왔다. 두번째 숙소인 둔내자연휴양림에서 오랜만에 늦게까지 대화를 한다. 내공이 증진되었음일까. 나로서는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한다. 운두령 송어횟집에서 처음으로 맛 본 감자술이 삼삼하다. 어쩌면 감자술이 늦은 시간까지 나를 유혹하였고, 나 또한 감자술로 인하여 늦은 시간까지 반해 있었다. 감자를 주 원료로 만든 세계 명주는 많다. 보드카, 스웨덴의 스납스, 핀란드의 코스텐코르바 등이 그것이다. 일제 때 잠시 끊겼던 술로, 예전에는 여과기술이 없어 탁주 형태였다. 지금은 투명하다. 알칼리성 발효주여서 산성체질화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적합한 술이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한 것은 많다. 아마 내가 오랜만에 꽤 떠들었나 보다. 그 떠듬으로 인하여 다랑쉬에 세미나실을 만들었다. 우선 첫번째로 동이족과 기마민족 등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칼럼을 옮겼다. 회원들이 읽고 함께 댓글이라도 달면서 인식을 공유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가끔 남의 글이라도 주제가 생기면 올려서 댓글로 토론하고자 한다. 물론 그 메뉴는 회원 전용으로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토론이 무르익으면 삭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많은 회원들이 함께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답사 이튿날이다. 통나무학교와 홀로세생태학교가 있다. 오전만 답사하고 일찍 회군하기로 한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홀로세생태학교로 단일화한다. 이렇게 진행된 홀로세생태학교는 이번 답사를 뿌듯하게 한다. 염충 선생은 '또 한 분의 기인'이라고 했다. 생태학교의 이강운 교장에 대한 평이다. 그러면서 이강운 교장이 이곳에 자리잡은 시기와 염 선생의 양동에서의 시기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끄집어 낸다. 미치지 않고는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라는 내적 진술을 공유한다.

답사 보고서는 바로 써야 한다. 물론 한참을 두고 잘 곰삭혀 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일상은 답사의 중요한 골자를 놓치게 한다. 그러면 답사 보고서의 진술에 헛바람이 쌩쌩 든다. 다랑쉬의 답사 보고서는 매우 진화되어 왔다. 이렇게 저렇게 써야 한다는 학습 없이 진행된다. 많이 쓰되 쓰고 싶은 대로 거침 없이 쓰면 된다. 이는 답사 여정의 전익요씨가 공헌한 바 크다. 답사 여정에 사진과 코멘트가 들어 가면서 답사 보고서는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다. 더군다나 이젠 가족 동반 답사도 답사 보고서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홀로세생태학교에서 포로가 된다. 아마 이번 답사는 그곳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마친 게 아닐까 싶다. 참으로 많은 시사점을 이강운 교장에게 받는다. 마치고 돌아올 때, 그런 소회를 전했다. 이 교장과의 만남은 시작부터 생태적인 사고로 날개를 돌리게끔 한다. 잠시 사용하지 않았던 생태적 용어들이 머리 속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처럼 돌아간다. 하도 사용하지 않아 매끄러운 소리를 기대할 수 없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다. 회원들의 머리도 뒤늦게 생태적 사고로 진입한다. 점점 답사를 임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먹이식물에 대한 사고의 진화가 좋다. 사고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뇌의 활동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뇌라는 것은 자주 삐딱한 기울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이 뭐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뭐꼬?'보다는 사고의 중심을 바꾸어 보는 것은 마치 몸의 경락을 열어 내는 것과 같다. 잘 사용하지 않는 몸의 경락 모두를 건드리고 온 몸의 모공을 연다. 그러면 신선한 공기가 내 폐로 스며 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얻는다. 뇌에 신선한 산소가 들락거린다.

공진화coevolution에 대한 이야기 역사 마찬가지다. 공진화는 다른 종의 유전적 변화에 대응하는 한 종의 유전적 변화이다. 종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반영을 통한 진화적 변화다. 미국의 생물학자 폴 R. 에를리히Paul R. Ehrlich와 피터 H. 레이븐Peter H. Raven이 나비와 식물의 밀접한 관계를 연구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달팽이와 홍단딱정벌레를 사육하는 실험실 케이지에서 발견한다. 홍단딱정벌레는 긴 두상으로 달팽이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잡아먹는다. 육식을 한다. 달팽이는 거기에 맞서 달팽이 입구의 살에 더 단단한 껍질로 진화한다.

각시멧노랑나비는 갈매나무의 잎 위에 하얗고 길쭉한 타원형의 알 하나를 낳는다. 갈매나무 잎이 다 돋아 나기 전에 산란을 한다.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처음에 갈매나무 잎이 나올 때 반으로 접혀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산란을 하면 나중에 잎이 자라면서 알이 잎의 뒷면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된다. 팽나무는 참으로 유익한 먹이식물이다. 뿔나비, 홍점알락나비, 흑백알락나비, 왕오색나비, 수노랑나비까지 5종의 나비가 팽나무를 먹이식물로 삼는다. '팽나무 사랑이 곧 나비 사랑이다'라고 한다.

내친김에 회원들 모두에게 한 권씩 사서 돌려 보게 한 이강운 교장의 고3짜리 딸, 이가영의 '나비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의 책에 나와 있는 먹이식물을 진술해 본다. 먹이식물을 알아야 곤충과 친해질 수 있다. 다행히 식물 공부의 기초적 소양이 있다. 지금까지 막연히 곤충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이제는 식물에 대한 기존의 공부를 가지고 거꾸로 곤충 공부를 하려 한다. 선발지식이 후발지식을 끌고 갈 수 있다. 홀로세생태학교의 캐릭터는 꼬리명주나비이다.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은 쥐방울덩굴이다.

수태낭이라는 게 있다. 수태낭을 만드는 것은 모시나비와 붉은점모시나비 그리고 애호랑나비라 한다. 수태낭은 짝짓기를 마친 암컷의 배에 생기는 주머니다. 한 번 짝짓기를 한 뒤 수컷의 분비물로 암컷의 배 끝 부분을 막아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못 하게 막는 것이다. 거참이다. 모시나비의 먹이식물은 현호색이다. 산초나무는 호랑나비와 긴꼬리제비나비, 바디나물은 산호랑나비, 쥐방울덩굴은 아까 말한 꼬리명주나비와 사향제비나비까지, 조팝나무는 줄나비류와 부전나비의 먹이식물이다. 거참, 식물이 보이니, 나비가 보인다.

산호랑나비는 당근까지 먹이로 삼는다. '당근벌레'라 하는 이유다. 당근 재배 농민의 농약은 산호랑나비를 없애고 희귀종이 되게 한다. 족두리풀은 애호랑나비의 먹이식물이다. 갈고리나비의 번데기는 돌배나무 가지에 붙어 가시처럼 위장한다. 갈고리나비에게 돌배나무는 매우 중요하다. 나무를 농장에서 기르다 보면 여름 쯤 어느 새 환삼덩굴이 나무를 가로막고 있다. 그 환삼덩굴도 네발나비의 먹이식물이다. 애벌레가 그 잎과 줄기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배추흰나비의 먹이는 반드시 배추라 할 수 없다. 케일...등 장소에 따라 다르다. 개갓냉이, 장대나물도 먹이식물로 삼는다.

바위솔에게는 먹부전나비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개미와 먹부전나비의 애벌레서 서로 공생한다. 이른 봄이면 겨울을 간신히 넘겨 힘이 없는 나비들이 날아 다닌다. 이때의 에너지원이 진달래다. 이번 답사에 이강운 교장이 처음 안내한 곳 주변에 국화가 그랬다. 마지막 에너지원이라 한다. 공생과 공진화, 그리고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 먹이식물로서의 상호관계...이런 것들이 답사 내내 들뜨게 한다. 삶의 형태가 그대로 스며 있다. 곤충들이 산란할 때의 정교함, 앵두나무의 역할, 그리고 연못에서 떠 올렸던 'Check and Balance'는 내 뇌에서 오래도록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