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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명경수를 노닐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명경수를 노닐다 / 온형근



청송에 있는 주왕산, 주왕이 숨어 살던 곳. 권력은 하나여야 하는 잔인함을 피한 곳. 주산지라는 명소가 있는 곳. 그래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떠오르는 곳. 그 영화의 사찰 자리를 가늠해 보는 재미. 왕버들의 세월과 위용. 새벽 안개 몽실 피어 올라야 제 맛인 곳. 안동을 거쳐서 찾아 간 곳이 주산지이다. 주산지 전망대에서 잠시 머문다. 막걸리 맛으로 몸을 추스린다. 사실 이 막걸리는 저녁 식사를 먹는 송어횟집에서까지 몸을 불편하게 한다. 꽉 찬 듯한 방부제에 대한 내 몸의 예민함이 돋보인 막걸리다. 말통들이로 시판되는 막걸리 맛과 플라스틱 병에 들은 막걸리의 차이다. 나를 속이려고 해 보았으나, 몸은 저절로 반응한다. 내 몸은 정직하다. 내 몸은 그래서 늘 아프다. 아픈 몸을 돌보지 못할 때 내 몸은 거칠어진다. 거칠어졌을 때 생각은 가지런해진다. 그래서 너무 오랫동안 아프지 않으면 아파져야 하는지 모른다. 가끔씩 아파야만 아픔 속에서 겸허해진다.

 

도연명은 오류선생전을 지었다. 자기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글이다. 자기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진술한다. 오류란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다. 여기서 말하는 버드나무는 못 가에 심어진 왕버들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도연명에게 정신적인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오류선생전에서 빌리기도 한다.

<오류선생전>
선생은 어느 곳 출신인지 또 그의 성이나 이름도 잘 알 수 없다. 그의 집 곁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어 그렇게 호를 오류(五柳)로 하였다.
선생의 성품은 한적하고 조용하며 말이 적었으며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책 읽기를 좋아했으나 지나치게 따지거나 집착하지 않았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즐거워서 끼니도 잊고 탐독하였다.
타고날 때부터 술을 좋아했으나, 집이 가난하여 언제나 마실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이와 같은 처지를 알고 간혹 술자리를 마련 해 놓고 그를 초대하면 가서는 언제나 다 마셔 버리곤 하였다. 기약은 반드시 취하는데 있었다. 취하고 난 후에는 물러나며, 떠나는데 마음 아쉬워하지 않았다. 
사방이 벽만 둘러 있는 작은 집은 쓸쓸하기만 하고 바람도 비도 가리지 못하였다. 짧은 잠방이는 해져 꿰매 입었고, 밥그릇도 물그릇도 자주 비었지만 편안하였다. 항상 문장을 써서 스스로 즐기면서 다소나마 자기의 뜻을 보였다.
  득(得)과 실(失)을 마음에 잊는 그런 자세로 자신의 생애를 마치려 했다. 이 얼마나 자연에 묻혀 살려고 하는 마음인가. 스스로를 즐기는 삶이다.  

수원 화성에서 가장 멋진 경관이 방화수류정을 오르기 전에 있는 화홍문이다. 화홍문은 광교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의 물이 떨어지면서 내는 물안개가 무지개가 되어 아름답다는 곳이다. 커다란 정자이면서 군사시설이고,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이자 작은 댐이다. 그렇게 좌우로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는 풍경이다. 많은 사진과 그림에 그 멋진 풍경이 담아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왕버들이 아니라 버드나무인 것이다. 가지가 늘어지는 나무가 같은 간격으로 광교천을 따라 남문까지 이어지고 있다. 버드나무에는 능수버드나무와 수양버드나무가 있다.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새로나온 가지의 색깔을 보는 것이다. 새로 나온 가지의 색이 붉은 색 계열이냐? 아님 연두색 계열이냐에 따라 다르다. 붉은 색 계열일 경우 수양버드나무다. 그러나 수양버드나무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 연두색 계열인 능수버드나무다. 수원농생고의 연못 옆에 늘어져 있어 늘 연못을 청소하기에 애를 먹게 하는 것도 능수버드나무다. 왕버들은 중부이북에서는 월동이 곤란하다. 그래서 남쪽으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추운 곳에서는 도연명을 흉내내는 일조차 원천봉쇄된 셈이다. 그래서 버드나무로 대신하고 있다. 오류선생전의 류 역시 버들류자이니, 크게 어긋남도 아닐 것이다.

주왕산은 비례의 대조를 가진 산이다. 작고 아담하다. 동양의 미인을 만난 셈이다. 그래서 다녀온 사람들마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나 보다. 나는 처음이다. 함께 간 염충 선생이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고향이라고 귀뜸해준다. 청송의 진보, 김주영 선생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시장 모습이 그곳이다. 참으로 눈맛이 선선해지는 산이다. 八等身 미인이란 얼굴 크기의 8배의 비례를 말한다면, 주왕산은 八等身 미인산이다. 그러면서 파격적인 대조미를 이룬다. 그래서 오래 남는다. 작고 아담한 산이면서 우뚝 우람한 사이즈의 바위가 턱 놓여 있어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다. 명경수처럼 맑은 물이 한없이 이어진다. 넋을 빼앗긴다. 잔자갈이 맑은 물결만큼이나 선명한 깨끗함으로 물바닥을 이루거나 작은 둔덕을 이룬다. 잔자갈길을 통하여 물은 한없이 필터링되고 있으니, 그 깨끗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길만 자그만치 2-3킬로미터였다. 그렇게 명경수를 따라 시선이 붙잡혀 있을 때, 갑자기 집채만한 바위가 계곡을 차지하면서 시선을 놀라게 한다. 크기의 대조다. 극적인 대조미를 만난다. 잔잔하다가 큰 파도를 만난 듯 하다. 앞 개울 여울을 따라 걷다가 갑자기 기암절벽의 물결 센 바닷가를 걷는다.

 
 

물은 사람을 편안하고 차분하게 한다. 맑은 물이 끝없이 펼쳐지는 명경수를 주왕산 입구까지 내려오면서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머리 속에는 온통 명경수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오래도록 이 명경수를 지니려 함이다. 깨끗함이란 말을 직접 보고 느끼고 만져본 셈이다. 산이 남성적이라면 물은 여성적이다. 주왕산은 여성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면서 화산이 폭발하여 흘러 내리면서 굳어진 회류응회암의 절벽과 돌들이 우람한 기운을 보완한다. 어쩌면 여성성의 주왕산을 우람한 기운으로 감싸돌고 있기 때문에 긴 세월 동안 주왕의 계곡이 싱싱하고 힘차게 흐를 수있었을 것이다. 올해처럼 설악산 주전골까지 등산로가 망가지고 계곡의 모습이 변한 계절적인 우환하에도 주왕의 계곡이 끄떡 없는 것은 산이 비례적으로 알맞은 크기에서 자신을 가꾸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八等身 미인은 180센티의 키가 아니라 160센티가 안되는 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내뿜는 기운이다. 그런 면에서 주왕의 기운은 상서롭다.

 

국립공원이란 국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국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국민들에게 기운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좋은 기운을 얻으려고 전국에서 몰려 드는 것이 아닐까. 왜 사람들이 등산을 할까. 건강을 위하여라는 말이 단연 으뜸이고, 자연의 맑은 공기와 느낌을 지니려 함이 또한 으뜸일 것이다. 좋은 기운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산이다. 산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1. 절에 들어간다. 2. 고시 공부를 하러 간다. 3. 속세를 떠난다. 4. 약초를 캐러 간다. 등 많은 의미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산에 들어간 사람은 나온다. 산이 오랫동안 사람을 머물게 하지 않는다. 산은 적당히 품어주고 있다가 기운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 사람을 내쫒는다. 국립공원은 그런 측면에서 뱉어 내는 곳이다. 품은 척, 뱉어 내는 곳. 그게 국립공원이다. 그러니 국립공원이란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이름을 지어 놓고 잔치를 벌리고 치루고 쓸고 청소하고 있다. 전설이 깃들어 사는 곳, 그래서 늘 가보고 싶고 꿈을 꾸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일상에서 물리적 거리를 지녔으나, 심리적으로 한 곳에서 기거하는 곳이다. 더 많은 전설이 생성되고 회자될 수 있어야 한다. 2006년 9월 어느 날 다랑쉬가 주왕산 정상에서 천기와 지령이 융합된 영적인 기운을 얻는다. 1시간 여를 그곳에서 하늘과 땅의 기운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산을 나선 다랑쉬는 그 좋은 기운으로 다랑쉬의 정체성에 대하여 토론한다. 향상심을 모은다. 좋은 산은 오래도록 이미지로서 남는 산이다. 주왕은 그랬다. 비례의 대조미를 갖춘 명경수의 산이다. 인간미가 물씬 풍겨지는 척도를 지녔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허벅지가 뭉쳐 있다. 풀어질 때까지 주왕산과 명경수의 계곡은 나를 떠나지 않고 바람소리처럼 웅웅대고 있을 것이다.

(한국주택관리신문, 8월호 원고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