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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미학적이어야 하는가, 친숙해져야 하는가?

by 나무에게 2013. 12. 23.

미학적이어야 하는가, 친숙해져야 하는가? / 온형근 

  
자연을 관찰하는 행사, 자연을 체험하는 행사가 즐비하다. 이를 추진하는 주체와 대상 모두 다양하고 적극적이며 목적과 목표가 뚜렷하다. 연령과 직업, 성별, 빈부를 떠나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긍정적 자극을 준다. 이 시대의 보기 드문 합의된 공감대가 자연이라는 주제이다. 자연과 환경을 대상으로 인간과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조경학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973년도에 서울대학교와 영남대학교에 조경학과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인 전문 영역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구가 조경학의 영역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인문?사회 과학, 자연 과학을 통틀어 커다란 주제로 자리 매김 되어 있을 정도로 인류의 삶에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어 있다.

자연은 많은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게 한다. 존재와 존재를 넘어서서 자연은 자연으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다.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고 즐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을 미학적으로 바라보고 지닌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은 친숙해져야 하는 대상이다. 자연과 친숙해질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자연 관찰과 여행 또는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상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런 행사들의 기본 목표는 한 가지일 것이다. 곧 자연의 리듬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자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하는 길로 접어들어 보고자 한다.

자연은 수없이 많은 독특한 모양을 지닌다. 따라서 모양을 관찰하는 데에만도 삶이 짧을 정도이다. 하나의 모양이라 해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숲 속에 누워서 쳐다보는 하늘 높이 자란 전나무나 낙엽송을 바라볼 때의 감흥이 다르고, 숲길을 걷다 무릎꿇고 바라보는 야생화의 생경한 모습이 다른 것이다. 바라보는 자세에 따라서도 자연의 모양은 시시각각 새롭고 경이로운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을 충분히 지닌다는 것에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오감과 영감을 충분히 살리기만 하면 된다.

자연에서 오롯하게 듣게 되는 소리는 또한 어떤가. 숲길을 걸을 때, 바람 소리와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만나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낸다. 눈 덮은 겨울 산에서 만나는 눈과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또한 어떠한가. 사람의 소리는 자연에서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는 보통의 목소리보다 멀리까지 들리며 속삭임에 섞여 나오는 쉿소리는 동물을 놀라게 한다. 우리는 자연을 관찰한다고 하여 목소리를 낮추고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연은 그런 우리를 거꾸로 바라보고 있다. 자연을 관찰하려 다가갔지만 이내 자연에게 관찰 당하고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살면서 참으로 많은 기억들로 유쾌하고 불쾌해 한다. 기억에도 종류가 있고 분류할 수 있다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할 것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기억만큼 다의적이고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연을 관찰함에 있어서 냄새에 대한 기억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일부러 채집하지 않아도 기억으로 되살릴 수 있다. 자연의 냄새는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한 기억으로 남는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어떤 냄새는 그 냄새를 다시 맡을 때 과거의 때와 장소로 쉽게 되돌려 놓는다. 얼마나 친숙한 경험인가. 때와 장소 뿐 아니라 상황과 이야기와 추억까지 고스란히 되돌려 준다. 그러면서 아름답고 흐뭇하다.

자연에는 일정한 도형이 있다. 산업 사회에서 우리가 문명의 이기로 이용하고 있는 자동차, 비행기, 배 등 많은 산업물품들이 자연의 도형에서 디자인의 기초를 얻는다. 조류나 포유류 등 고등동물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좌우 대칭의 형태를 지닌다. 또한 식물에 있어서도 중맥이 있는 잎들 역시 좌우 대칭이다. 꽃의 경우에도 방사상 대칭의 형태를 하고 있고 그 기초는 원에 있다. 사람 역시 좌우 대칭의 형태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의 형태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것들이라 놓치기 쉽다. 거꾸로 자연에서의 형태에 대한 체험은 일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일깨워주는 것들이라 우리를 신선하게 해 준다.

사람에게 꽃, 나비, 새의 색깔에 대한 반응은 미학적이다. 그 아름다움에 감동한다. 그러나 대부분 동물들에게 색깔은 교통 신호처럼 실용적일 뿐이다. 발정기의 수새가 과시하는 색깔은 암컷의 성적 수용력을 갖추게 만들지만 사고와는 관계가 없다. 눈에 잘 띄는 색깔의 꽃은 그 속에 꽃가루와 꿀이 있음을 홍보한다. 새, 나비, 꿀벌 등은 꿀을 얻는 대신 그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 준다. 자연 관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색채이다. 참으로 현란하기도 하고 소박하기도 하다. 화려한 색채를 좋아하는 사람과 소박하고 은은한 색채를 좋아하는 사람의 내적 가치는 다르다. 정신적으로 완숙한 사람, 또는 삶에서 일정 부분 안목이 트인 사람이 좋아하는 색채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필자가 생활하는 수원은 광교산이 있어서 사람들은 쉽게 자연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멀리까지 찾아가 자연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조경계획에서는 이러한 것을 접근성이라는 용어로 분석하고 반영한다. 광교산 입구에 셔틀버스가 운영되는데 그 주차장 위에 {반딧불이 화장실}이 있다. 한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견학을 다녀갈 정도로 꽤나 유명한 화장실이다. 광교산에서 내려오는 광교천이 반딧불이 서식처이다. 자연에서 빛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냐고 물으면 반딧불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반딧불이의 암컷은 풀잎 위에 자리잡고 수컷은 그 위를 날면서 빛을 번쩍인다. 암컷은 일정하게 번쩍이는 빛에만 반응하며 응답 신호를 보낸다. 수컷은 자신과 같은 종이 내는 빛을 보면 내려앉아 교미한다. 자연에서 발하는 빛을 관찰할 수 있다면 보통 자연과 친숙해진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 외에도 자연과 친숙해지기 위한 지식의 준비는 더 있다. 식물과 동물이 하나가 되는 위장술에 대한 지식이라든가 생태에 대한 지식, 환경, 생물군계, 적응, 생활방식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이다. 오감에 영감을 포함한 육감까지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자기 내면의 표현이다. 자기 내면의 모양, 소리, 냄새, 형태, 색깔, 빛 등을 개발하여야 한다. 지금 내 안의 모양과 소리, 냄새, 형태, 색깔, 빛 등은 어떠한가를 자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과포장 되어 너무 미학적이지는 않은지, 아님 나와 내 안이 아주 친숙하여 함께 느낌을 공유하며 교감을 이루고 있는지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