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정 누정
온형근
차량이 쏜살같이 지나는 다리 아래로 감천의 여울은 잔잔하여 맑은데
한 잔의 맑은 녹차를 건네며 백석정이 말을 걸어 온다.
뭐라고 그때 일을 써 바치고 싶다는 모양새로 꿈틀댄다.
서편으로 해가 지려는 때쯤
이미 산그늘로 물살은 진하여 우주 한가득 담기고
늦가을 안개로 피어오를 때마다 젖었던 바위 이끼로 푸르고
붉은 단풍 너풀대며 석양빛 몇 줄기로 타오른다.
수심 낮은 물결 따라 조각배 혼자 노닐게 하니
쉼 없이 무심하여 드리운 낚싯대를 쳐다보는지 알 수 없다.
정자 마루에 앉아 난간을 붙잡은 채
상실의 시대를 하염없이 먼산으로 돌린다.
늦은 달밤 찬기운 몇 잔의 술로 뎁히고
아직 가라앉지 않아 일렁이는 일엽편주에
꽤나 산 날이 많아 어긋나는 순간 있어도
물에 비친 백석정, 내 몸 위에 초승달 하나 베이듯 걸쳤으니
언젠가 다른 이의 품새로 물결 조용히 바뀌련만
오늘의 풍광을 거울처럼 걸어 둔 채 두고두고 마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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