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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불우한 시대, 세월, 시간들

by 나무에게 2013. 12. 24.

불우한 시대, 세월, 시간들 / 온형근
2006-08-18 

  
손암 정약전 선생님이 유배로 세월을 보내신 흑산도를 다녀왔다. 그 긴 세월을 그 시대와 시간들을 건너왔다. 현산어보를 쓰셨다는 사실보다, 그가 흑산도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눈높이를 흑산도의 자연이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 손암 선생과 다산 선생의 애틋한 편지 내용을 읽고자 한다. 전부 다를.....얄팍함이 아니라 몽땅을...... 숱한 말들이 오고가는 현세의 입담보다는 기록과 문헌을 통한 젊잖은 접근, 그러고 싶다. 입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세상이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학동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손암 선생이 어부와 함께 동고동락을 하면서 혹독한 유배의 시간을 넘어서 자유의 영혼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내내 가슴을 흔든다. 흑산도였다. 여행의 감흥이 예전 같지 않다. 어디를 가나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은 결국 여행을 시답잖게 여기게 하는 악재다. 아니면, 인문학적인 꿰뚫음이 기세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떠랴. 어느 것이면, 또한 아니라도. 감흥 역시 나이를 먹고 수다를 떠는 동안 망가져 있을테다.


문이 찟겨 나갔다. 결국 사람이다. 인문학은 사람이 하는 학문이다. 모든 것은 인문학으로 통한다. 사람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리 알았다면 문종이라도 사가지고, 일을 했어야 했다. 일하며 땀 흘리는 동안, 실제로 몸으로 뭔가를 하면서 사유하는 자유는 얼마나 깊고 행복할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기 전에 당장 눈 앞에 할 수 있는 일을 거뜬히 건너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딱 한 가지라도...... 주객이 허물어져야 할 상황에서 여전히 객이어야 하는 게 무척 싫다.

살아있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면서 동시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일이다.  손암 선생도 그랬다. 지기이자 형제이며 서로 알아 주는 동생 다산과의 해후, 결국 이뤄지지 않았던 시행착오 끝에 돌아가셨다. 유배 기간 동안 나눈 서신에 비해, 오고 가는 배, 인편으로 한 달씩 뒤 늦고 하는 소식들에.  손바닥  따스한 기운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그렇게 애끓는 이별을 하신다.

가슴이 찢어진다. 손암 선생과 다산 선생의 현세보다, 이 대책없는 후세가 더욱 슬픈 것을 보니, 그 슬픔은 얼마나 길고 아득한 슬픔인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슬픔이다. 서당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발길 닿는 모든 게 흑산의 자연과 맞물려, 손암 선생이 그윽한 시선으로 굽어 보는 듯하다.  그 날 밤 나는 홍어도 탁주도 모두 내 것 같지 않았다.

한국주택신문 2010.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