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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비가 오고 배수로는 늦어지는데

by 나무에게 2013. 12. 24.

계속 비가 온다고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한 생태 연못의 콘크리트가 새기 시작한다. 작년부터 조금씩 증세를 보이더니 올해는 노골적이다. 작년에 심은 나무들이 시들기 시작한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병색이 완연하고, 드디어 황금측백나무의 황금색이 돌지 않는다. 심각한 시각적 공해로 병색이 드러난 셈이다. 나무를 뽑아 보니 모두 깊게 심겼다. 작년에 심었던 사람들이 모두 깊게 심고 만 셈이다. 거기다가 밭에 물이 차 꼼짝하지 않는 것이다.

시범만 보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에게 설명을 하였으나 대답이 궁색하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투로 자세가 읽혀진다. 또 근성이 솟는다. 옷 갈아 입고 나오겠노라 했다. 오늘 난 또 시범이 아니라 기사 교육과 학생 수업과 노가다 인부 몫까지 하고 말았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다. 캐는 방법을 알려주고, 다시 뿌리 다듬기, 그리고 다듬은 나무를 자리를 옮겨 심는 것까지 치고 나간다. 몸이 바스러지는 듯 하니 점심시간이다.

나무를 심고 죽이는 이유는 100% 깊게 심었기 때문이다. 얕게 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면선에 나무의 뿌리가 들어 올려진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보아도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뭔가 가려야 할 것을 가리지 않은 추함이 나타난다. 그러나 깊게 심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일단 시각적으로 완벽하다.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밟아 주면 굳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다 밟고 다진다. 나무 뿌리 주위 처리를 잘 해야 한다. 심을 줄 아는 사람이 대충하는 것 같아도 고도의 테크닉이 그 안에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잘 하는 것 같아도 초보자는 많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땀을 말려야 하는데 등뒤가 차다. 옷이 젖었는데 그냥 맨몸으로 말려야 한다. 다 마르면 옷을 갈아 입고 거동한다.  겨우 배수로를 정리하고 나무를 다시 심는 일을 복병처럼 만난 것이다. 올해의 시작은 처음부터 예상되었지만 그 경계에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였지만, 다시 삽을 잡는다.  얼른 돌아 앉아야 하는데 도시락은 여전히 나를 쳐다본다. 황금측백나무가 황금색을 내지 않는 것은 호흡뿌리가 배수 되지 않는 땅속에서 쩔어 있기 때문이다. 제 색깔을 내지 않는 나무 134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 간격, 그 위치, 그 높이로 심게끔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오후에 나갈 수 없는 사정을 위하여 미리 모범 식재를 만들어 둔 것인데, 134그루를 1시간만에 심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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