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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이때, 내가 심은 나무는

by 나무에게 2013. 12. 24.

여주 능서 왕대리, 전세를 빼서 사글세로 바꾸고 땅을 빌러 나무 심기를 한다. 꽃물푸레나무를 선택한다.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조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번식하는 나무였다. 이미 메타세쿼이아를 이천에서 시작하여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전격적으로 돌입한다. 몇 남은 메타세쿼이아를 가지고 와서 심었다. 뿌리를 검정 비닐에 흙과 섞어서 넣어서 운반하고 심는다.

 

 

꽃물푸레나무를 파종하고자 종자를 수입한다. 수입대행회사와 사이가 좋았다. 그와 나는 지금도 부채가 있다. 많은 사진과 책을 구득할 수 있었고, 나는 전세 뺀 자금으로 종자를 수입했다. 이렇게 시작한 꽃물푸레나무의 묘목 수는 10만 주가 넘었다. 그때의 밭 관리를 위한 애씀은 지금 표현하기 뭣하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그 밭에서 주말을 함께 보냈다.

이렇게 기른 꽃물푸레나무는 PC통신 하이텔을 통하여 불교동호회, 농업과학연구회(농과연) 등을 통하여 무료 분양한다. 이때는 나무가 커져서 더 큰 토지가 필요하기에 아예 점동으로 땅을 구입하여 이사를 한 후다. 점동에서의 3년은 내가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된 후에 그만두게 된다. 불교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도 그 방송 파일이 있다.

 

 

수익이 없었다. 국가가 빚더미에 앉았다는 IMF 시절에 점동의 땅을 팔고 나왔다. 병원으로 입원할 때는 점동이었지만, 퇴원할 때는 관사였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분간 흙에서, 땅을 일구는 일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점동에서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마을에 적응한답시고 함께 술을 마셨고, 상여도 매 보았으며, 절기마다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밀곤 했다.

그 꽃물푸레나무는 신륵사에도 심었다. 심었지만 그 후의 일은 모른다. 여주 사료공장 옆에 몇 그루 심겨져 있다. 혼자 속으로 의미를 새긴다. 나무의 활력은 좋지 않다. 밭을 만들고 풀을 뽑고 각종 관리를 하느라 들어간 비용을 전혀 뽑아내지 못한 상태로 내가 심은 나무는 뽑히고 갈아 엎어졌다. 그와 함께 꽃물푸레나무의 기억은 꼭꼭 숨겨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꽃물푸레나무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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