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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소모023-消耗

by 나무에게 2013. 12. 23.

소모023-消耗 / 온형근


소모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비교적 탄탄한 수련을 마친 날이다. 버스를 타고 돌아 오면서 근래의 일상이 꽤나 소모적이었다고 회상한다. 뿌듯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정성껏 어떤 일을 마쳤을 때, 갑자기 딴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본다. 아니, 본래의 모습이라 여긴다. 소모消耗란 꺼져서 줄어 든다는 말이다. 약해지고 다한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백일 축기는 말 그대로 축기築基다. 기반을 쌓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방기하고 소진하는 쪽으로 쉽게 접어 든다. 한동안 빠진 모임에 나가 술을 마신 일이 그렇다.

도인체조를 하면서 걱정한다. 몸이 성치 않다. 그런데 비교적 수월하다. 장상臟象을 공부한다. 목화토금수를 새긴다. 그동안 '그런게 있지'만으로 일관했지만, 오늘은 인연이 닿는지 새겨진다. 이렇게 이어진다. 목화토금수-간심비폐신-담소장위대장방광-목설구비이-청적황백흑-혼신기백정-동남중앙서북-노희사비공-산고감신염이다. 산발적이었던 내용의 압축을 짧은 시간에 얻은 셈이다. 나는 간쪽의 내용에 의념이 간다. 木-肝-膽-目-靑-魂-東-怒-酸에 머문다. 오행기도에는 중앙인 土-脾-胃-口-黃-氣-中央-思-甘을 빼고 시간 개념이 덧붙여진다.

중앙에 土(脾)를 중심으로 왼쪽을 東, 윗쪽을 南, 오른쪽을 西, 아래쪽을 北으로 둔다. 시간 개념을 덧붙이면 東-卯時, 南-午時, 西-酉時, 北-子時가 된다. 이를 풀면 간의 운행 시간은 오전 5-7시 사이, 심장은 오전 11-오후 1시, 폐는 오후 5-7시, 신장은 오후 11-새벽1시 사이에 활동한다. 자시공이라는 수련은 신장을 좋게 한다. 신장은 精을 보관하고 생성하는 곳이다. 이렇게 오행기도五行氣圖를 그려봄으로써 오늘 수련의 대강을 정리한다. 몇 번 더 그려볼 필요를 남겨 둔다.

술 마시는 행위 자체는 소모가 아니다. 아직 술에 대한 미련이 있어 여지를 남기고 있음이다. 술 마시며 침 튀기는 일은 소모다. 술 마시는 일이 무위無爲였으면 한다. 에고ego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왜 그 자리에서 가만 있지 못할까. 어떤 부분은 스킵하면서도 특정 부분에서는 민감하다. 소아小我는 늘 감추어 있다. 잘 숙달된 대의명분에 의해 선물 포장된다. 그냥 말로 표현하지 않았으면 싶다. 그러나 그 말이 가려워 그 자리에 나선 게 분명하다. 백일 축기는 무엇을 쌓겠다는 것인가. 쌓아서 어디에 쓰겠다는 것인가. 왜 건강을 지켜야 하는가.

또 다른 내가 유혹한다. "가끔씩 씩씩거리며 소아를 드려 내고, 때로는 근사하게 포장하여 숨기고 낄낄 거리며 산다. 찜찜하면 자신을 돌아 보고 깊이 사색하며 반성한다. 수도자처럼 근엄하게 자신을 지킨다. 그러다 또 다시 씩씩거린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는 무위를 닮고 실천하고자 애쓰겠지만, 유위에 더 매달린다. 남과 비교하면서 나는 간이 나빠 분노를 잘한다. 肝-魂-怒를 생각한다." 이러면 왜 안되는 거지. 무엇이 내게 건강인가. 이 또한 소모일테지. 일테면 축기 이후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 인연법에 의해 축기가 요구되는 어떤 업보가 시작되었음이라 환기한다. 다만 정성스러워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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