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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오래된 옥잠화

by 나무에게 2015. 8. 31.

 

오늘이 보름이다. 음력 칠월이니 칠석도 지난 그런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을 때 바라보는 옥잠화를 상상한다. 흰색은 밝아서 눈길을 끈다. 반짝이는 흰색은 더더욱 처량할 정도로 서럽다. 달빛에 서로 뽐내는 옥잠화가 그랬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를 개교하면서 조경설계를 맡았고, 시공까지 직접 완료한 일이 까마득하다. 북향의 건물 아래 식재할 수 있는 음지 식물로 당시 덜 알려진 구상나무를 고집하였다. 물론 주목도 함께 도입하였다. 문제는 지피식물이었다. 나는 전체를 옥잠화로 식재하기로 결정하였고 전체 군식으로 처리하였다. 20여년 지난 지금 이 옥잠화는 세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갱신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집단미를 보여준다. 늦은 밤 달빛에 어울리는 옥잠화를 보면 몸서리친다. 서늘함과 몸 시리도록 깨끗한 고결한 흰색이 저리고 아파서 전율한다. 오늘 아침 이른 출근길에 만난 저 아이들의 심성으로 절로 발길이 머문다. 주변을 돌다가 결국 근처의 잔디밭을 만나고, 잔디를 미끈하게 깎아서 옥잠화의 흰 세상이 빛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옥잠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기를 위해 뭔가를 하게끔 이끈다. 소복이 그렇고 하얀 치아가 그렇다. 백치미다. 옥잠화는 거기다가 준열한 유혹의 손짓도 가졌다. 아무나 쉽게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가, 준엄한 기품으로 범접을 거부하는 기개어린 무언의 표정으로 반듯하다. 비록 구근의 힘이 떨어져 비녀의 크기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모여 핀 꽃들이 밝혀주는 환함은 가히 눈을 씻어내게 한다. 참으로 이 아침 기껍다. 기어이 옥잠화의 오래된 미소를 되찾는다. 피할 수 없는 인연이다.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만남이다. 얄궂은 게 소리 소문 없이 빙글 돌아와서는 어느듯 다가 환하게 웃고 있다.

 

 

출처 : :::사이SAI:::조경문화교육공동체
글쓴이 : 나무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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