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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영춘화 화분을 하나 얻는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영춘화 화분을 하나 구했다. 꺾꽂이 번식을 위하여 어미나무로 가져온 것이다. 일단 집에 와서 거실에 두니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꿈틀댄다. 영춘화는 한자로 迎春花이다. 봄을 맞이하며 환영하는 꽃이다. 모리스풍년화, 풍년화, 생강나무, 산수유, 개나리 등 꽤 많은 나무들이 봄의 전령사로 이름 불리지만 영춘화는 아예 봄을 노골적으로 이름에 넣고, 내가 너를 따뜻하게 환영하며 맞이한다고 봄의 실체를 명찰로 달고 있다. 물푸레나무, 쇠물푸레, 들메나무, 쥐똥나무, 미선나무, 개나리, 만리화, 수수꽃다리(라일락) 등과 함께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꽃은 잎보다 먼저 피고 노란색의 통꽃이며 각 마디에 마주 달린다. 이른 봄에 피는 개나리와 꽃이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고, 꽃이 피는 어린가지는 녹색이고 네모진다. 보통 능선(稜線)이라고 부르는데 모가난 선으로 이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개나리가 4갈래로 갈라진 통꽃이라서 골든 벨(Golden bell, 황금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영춘화는 6갈래로 갈라져 수평으로 퍼지는 넓은 깔때기 모양이다. 만리화 역시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4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진다. 전체 수형을 보면 가지가 많이 갈라져서 옆으로 퍼지고 땅에 닿은 곳에서 뿌리가 또 내린다.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영춘화의 학명은 Jasminum nudiflorum Lindl. 이고, 영명으로는 Winter Jasmine 이라고 한다. 학명이나 영명에서 자스민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향기가 없다. 화분이 거실에 앉자마자 꽃눈이 터지려고 한다. 첫 번째 찍은 사진의 날짜가 1월 27일 09:54에 해당한다. 꽃눈의 색깔이 제법 붉은 빛이 돈다. 아직은 이 꽃눈에서 노란색 꽃을 느끼기에는 이르다. 그러나다 다시 이틀 후에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1월 29일 사진 2장은 출근 전에 07:00, 07:03 분에 찍었다. 이미 노란색 꽃망울이 장하게 비집고 몸을 틀고 있다. 내일쯤은 꽃 핀 사진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영춘화를 처음 만난 게 1986년 9월, 이천에서다. 벌써 25년여가 되었다. 그러니 꽤 오래된 친구다. 그때 밭에 꺾꽂이를 하여 하여 지천으로 심어 풀메며 가꾸었다. 그때 영춘화는 분재 소재로 이용되는 나무였고, 지금도 분재 소재로 만들어져 봄 한 철 사람들의 봄맞이 기분을 들뜨게 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대개 그렇듯이 생명력이 매우 강한 나무다. 꽃은 전년도 신초에서 꽃눈이 형성되어 이듬해 봄에 개화한다. 붉은 빛의 꽃눈을 싸고 있던 껍질을 툭 치며 달려 나오고 있다. 

가만히 영춘화를 쳐다보면서 이 나무를 분재 소재가 아닌 조경용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영춘화를 다른 나무의 아래를 장식하는 지피식물로 이용하면 좋겠다. 아주 낮게 땅을 피복하는 식물보다는 약간 높은 지피식물로 이용하는 것이다. 가지가 땅에 닿으면 곧바로 다시 뿌리를 내리므로 지면을 피복하는 데에는 적당하고 성질이 강건하기 때문이다. 이른 봄에 노란색 영춘화 꽃이 집단으로 피었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그렇게 무리심기(群植)로 식재되면 이용가치가 높을 나무다. 특히 꺾꽂이가 잘되므로 전년도 가지를 잘라 봄에 꺾꽂이를 하거나, 여름에 새로 나온 녹지와 전년도 가지를 함께 붙여 꺾꽂이하는 방법도 있다. 큰 시설이 필요한 게 아니고, 노지에 직접 꺾꽂이를 하여도 잘 번식된다.

이러한 좋은 소재가 잘 이용되지 않는 것은 재배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조경설계에 크게 이용되지 않는 경우와 조경설계를 하는 사람들이 영춘화의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경에 이용되는 식물 소재는 다양할수록 바람직하다. 최근에 어떤 나무가 좋다고 하면 지역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가로수로 심고 경관식재로 식재하고 품귀현상을 일으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다 유행처럼 어떤 시대를 자로 잰 듯 일정하게 하는 행태다. 그 지역과 지방을 대표하면서 특색 있는 식물로 경관을 가꾸어야 할 것이다. 영춘화는 소재가 관목이다 보니 기르다가 많아지고 팔리지 않으면 다른 나무로 대체하기 위하여 버려지기까지 한다. 고집스럽게 영춘화를 다양한 품종으로 개발하는 특별한 사람이 있으면 쉽다. 영춘화의 꽃피는 기간을 늘릴 수 있고 제대로 많은 양을 매년 일정하게 공급할 수 있으면 영춘화를 특화하여 창업도 가능할 것이다.

네 번째 사진은 1월 31일에 찍은 것이다. 어딘가 급히 나가야 하는데 한 송이 꽃이 살포시 피어 나를 봐달라고 애틋하게 손짓한다. 꽃은 피었고, 꽃봉오리는 피려고 부풀어 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저렇게 피려고 부풀어 있는 격양된 상태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힘이 있어서 아름답다. 주역에서 말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형亨의 모습이 저 꽃봉오리를 닮았다. 원元이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혼돈의 시절이라면 형亨은 그 다음에 오는 창조의 시기다. 아직 자라고 배우고 성장하는 시기가 형의 시기다. 리利가 왕성한 활동과 결실의 시기라면 정貞은 소멸의 시기다. 노쇠하고 병들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시기가 정이다.

다섯 번째 사진은 2월 1일의 사진이다. 순천만의 갈대밭을 뒤로 하고 진주를 들려 김천 직지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언뜻 영춘화를 생각했다. 긴 시간 돌아오면서 비몽사몽 몸을 쳐지고 긴장이 허물어지곤 했다. 동기들에게 잘 만났었고, 잘 돌아왔노라고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 놓고는 곧바로 사진기를 찾았다. 오히려 순천만에서 꼭 필요했던 사진기를 이제야 챙긴다. 순천만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역시 외출 하루만에 가득 피어 있는 영춘화를 만난다. 내가 영춘화를 영접하고 있었다.

(온형근,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조경설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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