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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황벽나무 찻상 풍경

by 나무에게 2013. 12. 24.

 

 

황벽나무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이다. 심어 놓았던 밭을 비워주어야 하는 입장에서 제 스스로 그 밭에서 자란 황벽나무를 베어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씨앗을 채취하여 여태까지 기른 내 자신에게도 성의를 다한 셈이고, 황벽나무의 위대한 베품에도 최선을 다한 셈이다. 평생을 곁에 두고 차를 마실 때마다 마주할 이 아름다운 인연을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찻상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싫증이 난다고 하여 내칠 방안 또한 전혀 있을 수 없는 그런 찻상으로 내 앞에 놓였다.

오래도록 찻물이 들어 울긋불긋 그 안에서 또 찻물 든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을 상상해 본다. 일부러 찻물이 흐르면 찻잔 바닥으로 이리 저리 긁어 주면서 전체적으로 곱게 찻물이 황벽나무 찻상에 물들게 하여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흐르는 흔적대로 제 멋대로 찻물이 들어, 그 보기 싫을 수 있는 무늬에서 꽃도 보고 열매도 보고 살아 있을 때의 황벽나무를 찾았던 나비도 보고 새의 그림자도 볼 수 있기를 끝내 희망하고 만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황벽나무와 질긴 인연으로 얽혀 있다. 어쩌면 황벽나무가 나를 끌어 당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황벽나무는 찻상으로 만들어져 평생 지기로 함께 살아 갈 것임에는 틀림없다. 가장 멋진 친구로 거듭 태어난 내 친구 황벽나무를 한번 더 쳐다본다. 서로 다정하게 눈인사를 나눈다. 오늘 새벽에도 뜨거운 차를 우려 따뜻한 체온을 나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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