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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원주권 답사.3_알타리무 익어 가는 들판

by 나무에게 2013. 12. 24.

원주권 답사.3_알타리무 익어 가는 들판 / 온형근



3. 알타리무 익어 가는 들판

황금빛 그대로인 벼들이 차창에 반짝인다. 들판에는 알타리무 직립하여 견고하다. 그 작은 밭에는 시퍼런 파가 살찐 기립으로 지상에 풍경을 덧칠한다. 들깨가 베어져 가지런히 눕혀 있고 아직 호박 덩굴이 섬섬옥수로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이런 시월 초의 풍경은 들판보다 생활에 더 가깝다. 신림은 내게 남다르다. 제천을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날 때쯤이면 도착한 것처럼 두근대던 곳이다. 다 왔을까 싶어 한번쯤 바깥으로 눈길을 주면 그곳은 어김없이 신림이었다. 대학생활과 군대생활, 다시 대학생활, 그리고 직장생활 한동안까지 이곳은 내 눈맵시를 꽤나 시리게 했다.

성황림을 들리고 근처 소로길에서 시간을 보내던 다랑쉬 팀과 만난 것은 신림 삼거리다. 굳이 찾아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렸다. 가겟집 앞에서 괜히 담배도 사보고, 맥주 캔도 사보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그 방식 그대로다. 금방 온다는 전갈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신다. 잠시 빗방울이 내렸다. 어, 하는 사이에 그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신림에서 영월 가는 길을 향한다. 나는 제천에서 영월을 가 본적은 있어도 신림에서 직접 영월을 가본 적은 없다. 예전에 국회의원선거 때, 영월의 유력 의원이 강원도 길로 다니게 하겠다는 선거공약 그대로였다.

영월 책 박물관은 초등학교 폐교자리에 만들어졌다. 예전 초등학교 교과서와 방학숙제 책 등을 보는 일은 꽤나 즐겁다. 보는 순간 불길처럼 확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 좋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특정 학년의 교과서나 방학숙제 책을 보면 그 학년의 담임 선생님이 자동으로 불쑥 떠오르는 체험은 남달랐다. 내가 다니던 이전의 책도 보았다. 초등학생의 관점으로 내 이전의 책을 본 게 아니라, 다 성장한 지금의 관점으로 내 이전의 책들을 보는 것은 논리적이고 꽤나 잘난 척이다. 해방 직후, 한국 전쟁, 5.16 이후, 등등 내가 아는 역사와 그 시절의 초등학교 교과서는 다분히 객관적이어서 낯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