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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원주권 답사.5_나는 첫 날만 써야겠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원주권 답사.5_나는 첫 날만 써야겠다 / 온형근




5. 나는 첫 날만 써야겠다.

첫 날만 쓰자. 그런데 이게 답사 첫 날에 해당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고 나서의 풍경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랑쉬가 처음 결의를 다진 곳이 원주 치악산 휴양림이다. 그곳에서 나와 정명렬, 안행준 이렇게 셋이 뜬구름 잡는 결의를 한 것이다. 지금도 뜬구름 잡고 있기는 매 한지다. 잠을 못 참는 내게 답사 후 숙소에서의 술 마시는 행위는 성공률이 희박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닭을 사서 백숙을 해야 한다는 총무의 의지와 달리 나는 새벽에 국물을 마셨다. 남들 깰까봐 조심하면서 새벽을 연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 중에 하나가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를 따라 걷는 일이다. 그것도 새벽길을 나서고 싶어한다. 치악산 휴양림의 황토방은 숙소와 산책로가 가장 가까운 곳이다. 새벽 갈증으로 일어나 엊저녁 맛보지 못한 백숙 국물을 파 송송 넣어 끓여 마시고 산책로에 들었다.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이 곧 끝나고 신작로가 펼쳐진다. 깊게 심호흡을 한다. 숨쉬기에 정성을 들이기 위해 하늘을 보는데 삭으로 가는 그믐달과 샛별이 빛을 내고 있다. 싸리나무들은 벌써 노랗게 든 단풍을 자랑한다. 여기서 혹은 저기서 수상스러운 소리들이 있는 새벽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채 단풍이 익지 않는 먼 산들이 ‘보들보들’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촉감으로 닿는다. ‘살찐 포동포동함’이, ‘왕만두 살결’ 같았다. 그리고 다시 긴 숨을 몰아쉬면서 사유에 이른다. 돌아와 12시간을 잤음에도 다음 날 기력이 모두 떨어진 것처럼 느꼈던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혹은 내가 늘 좋아하던 장렬하게 꽃이 지는 능소화나 무궁화가 아니었던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고꾸라져 무의미한 쓰러짐에 너무 익숙해진 생활을 아닌가를. 이것도 나를 이루는 풍경임이 분명하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