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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뭉기적거리다_지리산 근처

by 나무에게 2013. 12. 24.

뭉기적거리다_지리산 근처 / 온형근



지리산이다. 슬기 지(智)와 다를 리(異), 슬기와 다르다는 것은 슬기로움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함일까?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말한다. 어머니라고도 하고 부드러움이라고도 한다. 나는 지리산을 1980년 여름에 올랐다. 그리고는 인연이 없었다. 지리산을 말하는 사람들 앞에 늘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지리산에 대하여 할 말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인터넷만 검색하면 꽤 많은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돌릴 수 있는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속에서 걸러져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 그러니 지리산 근처를 도는 이번 생태 답사는 근사하기만 했다. 내공이 일천한데도 불구하고, 마치 지리산에 당연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당사자라고 여긴다. 이번 답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함께 한 다랑쉬 회원들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연은 또한 귀하다.

최태영씨가 그렇다. 작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넘치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다. 그의 언행에는 일관된 논조가 있고 실천이 있다. 로드 킬(Road kill)이라는 말을 배웠는가 싶은데, 어느새 내 것처럼 여겨졌다. 배움이 곧 실행이다. 그에게는 사람을 가르치는 힘이 있다. 지리산에는 많은 기인들이 모여 산다. 그도 기인이다. 일테면 나이가 어린 기인인데 상당한 내공이 엿보인다. 야생동물소모임인 야소모를 알게 되었고, 그가 만든 동물의 발자국을 그린 몇 가지 뚜렷한 성과를 보았다. 이는 그가 앎에 대하여 떠들고 마는 힘없는 지식인이 아님을 증명한다. 생각을 모으고 그 생각은 곧 행위로 연속되고, 다시 생각을 다듬고 다음 행위를 이끌어내는 줄기찬 기운을 잘 펴고 있다. 지리산의 기를 그의 내공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다.

최세현씨를 만났다. 끊임없이 꿈을 지닌 사람이다. 그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안솔기 마을이 그렇다. 거기까지 발걸음을 이끌어 내기에 그는 또한 얼마나 먼 길을 돌아 왔을까. 올곧은 하나의 길을 택하여 걷는 길이 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시멘트 회사에서 안솔기 마을까지 이르는 길은 밀림이었다. 그래서 숲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숲 산책과 숲 체험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일에 쏟아낸 정열만 가지고도 안솔기 마을은 몇 개나 더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는 배우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내공 역시 경계가 없다. 없는 듯 하면서도 꽉 차 있고, 꽉 차 있는 듯 하면서도 텅 비울 수 있는 그의 경계는 실로 무량하다.

다랑쉬는 거침없다. 다랑쉬는 명사이면서도 동사다. 그러나 다랑쉬는 무력하다. 다만 답사 자체만은 성장 동력을 지녔다. 성장 동력을 지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요하다. 이번 답사에서 두 분에게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걸린다. 그러나 그만한 사람들이면 다랑쉬도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돌아오면서 내내 상현 초승달이 선명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깨끗한 눈썹처럼 거꾸로 그려져 있다. 지리산의 울퉁불퉁한 근육이 그려져 있다. 초승달의 좁은 폭에 남원, 노고단, 88고속도로, 경호강, 산청을 굽어보거나 곁에 두고 있는 지리산이 가득하다. '로드 킬 된 동물의 사체를 치우면서 그들의 호소를 듣는다'는 최태영씨의 내공과 '어려운 부분이 생기면 뭉기적거리면서 넘긴다'는 최세현씨의 다양성에 대한 신념은 한결같은 배려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아름다운 답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