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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주체적으로 살기_1. 괴로움

by 나무에게 2013. 12. 24.

주체적으로 살기_1. 괴로움 / 온형근



1. 괴로움

괴로움은 가끔 독을 품는다.
뒷목이 아플 때,
그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혼자 내적으로 징징댄다.
무척 아팠고 아픈 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술은 맛있다.
나는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지병인 뒷골을 뒤로 하고,
사실 답사 내내 아팠다.
아팠지만 참을 수 있었다.
많이 풀린 것도 절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공포였다.

난,
오늘 세상 많이 비껴 있었다.
바쁘다는 것은 내가 필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일.....
그 일로 바빴다.
그러나,
그 일이 마쳐지는 순간 나는 오히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간단하다.
바닥을 기어야 하는데
바닥을 길만한 질주가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

참 드물게 집에서 술을 마신다.
사실 밤늦게 일을 하다 거친 곳도 없이 돌아왔는데
집은 늘 뒷골과 상관없이 같은 궤도를 돈다.
난 다시 나간다.
동네를 돈다.
없다.
다시 들어온다.
캔 맥주 2개를 꺼낸다.
소주를 달라고 한다.
소주 1병을
엊그제 아파서 못마신 '소맥'을 실현한다.
조금 아프다.
그러나 속은 여전히 아프지 않다.

염선생은 그랬다.
반신욕을 하라고..
헤어질 때 짠한 마음을 내게 남겼다.
난 그 짠한 마음으로 다랑쉬가 남다르다고 느꼈다.
다음날 아침 그렇게 반신욕에 들어갔다.
물론 집이지만,
그렇지만 그 잘 나오던 머리에서부터 쏟아지던 땀방울조차 없다.
결국 나는 염선생이 지적한 그대로다.
쏟아낼 게 없는지도 모른다.

오늘 풀을 뽑았다.
꽉 찬 시간 틈에서...
그런데 땀은 흐르는데...
이것과 그것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난,
가끔 목숨을 건다.
이렇게..
아니 진검을 쓴다.
그 진검이 하찮다 하더라도...
하지만,
노력은 한다.
그러나,
노력을 별로 믿지 않는다.
진검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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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수와 상처

-온형근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기는 정도가 다르다. 악기의 종류에 따라 내는 소리가 다르다. 서로 다르다 하는 것들 중 가장 극명한 것은 사람이다. 서로 다른 것들을 엮고 묶어 내려는 것은 분석이다. 분석은 특정 틀을 가진다. 특정 틀은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크기에 상관없이 이데올로기는 작용한다. 집단의 크기와 종류에도 불구하고 작용한다. 어떤 틀을 가졌을 때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의 정체성과 종류를 같이한다. 그래서 틀을 버린다는 것은 어렵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이미 굳건한 틀을 지닌 상태이다. 그래서 버리는 게 아니라 방기(放棄)가 된다. 여기서 관계가 작용한다. 관계를 깨는 것이 일차적인 비움의 철리(哲理)다. 그래도 살아있음의 관계가 남는다. 살아있음의 관계에 놓여 있기에 다시 그릇의 크기로 돌아온다. 그릇이 작으면 조금만 덜어도 많이 비우게 된다. 그러나 금방 찬다. 그릇이 크면 많이 비워도 많이 남게 된다. 그러나 다시 채우는 데는 더디다.

우회와 직진이 만난다. 전략과 진검승부가 만난다. 전략은 술수를 채우고 진검승부는 상처를 채운다. 둘 다 특정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향의 속성을 가졌다. 담기는 것이 술수이든 상처이든 어떤 시각과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치를 드러내며 환영을 받거나 뱉어지게 된다. 원초적 관계의 기본이다. 나이는 전략을 요구하는데 몸은 진검승부를 원한다. 몸은 전략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진검승부가 극성을 이룬다. 세월이 겉도는 셈이다. 후두(後頭)가 종일 울울(鬱鬱)하다. 과연 진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