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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주체적으로 살기_2. 보여짐의 모호성

by 나무에게 2013. 12. 24.

주체적으로 살기_2. 보여짐의 모호성 / 온형근



2. 보여짐의 모호성

혼자 술 마시는 행위는 자못 쓸쓸하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쓸쓸함을 건너뛰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지긋이 눈을 감고 혼자 술 마시는 행위를 상상한다. 그것도 거꾸로 왕대포집에서의 술 마시는 상상은 삼삼하다. 쓸쓸함과 장엄함을 넘어서는 해학이 있다. 답사를 함께 한 다랑쉬 회원들의 자리를 비워 둔다. 점점 왁자한 술집이 된다. 이제는 각자 제 이야기를 하고 제 이야기를 듣는다. 몇 주전자가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다 진득하게 자리를 잡는다. 한 쪽에서는 오래된 술자리의 익숙한 분위기가 언제였는지를 꼽는다. 아득한 옛 시절, 벌판에 모여 앉아 두런대던 행위다.

답사가 끝나면 보통 2-3일 안에 답사의 경계가 일상에 가두어진다. 어디 멀리 사라진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숨어 있을 것이다. 모아지지 않는다. 이번 답사는 <황금>이라는 말이 촌스럽게 남는다. 무안 백련사에서의 금개구리, 함평 고산동 마을의 황금박쥐, 그리고 마지막 답사지인 불갑사를 찾아갔을 때, 입구를 빠져 나오는 공사 트럭의 회사명, 황금조경...... 그 차에는 물을 줄 수 있는 탱크와 시설이 실려 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는 것과 배고픔을 견뎌 낼 수 있는 숭고함의 차이다. 황금과 생명력의 관계가 그렇다. 보여짐과 숨겨짐이 그렇다.

숭고함은 생명력이고 숨겨짐이다. 배고픔은 황금이고 보여지는 것이다. 뒷목이 울울하여 공포를 느낄 때 뿜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배고픔이고 황금이고 보여지는 것이다. 조금 나아져 술을 마시고 싶다. 내 안의 나와 보여지는 나는 심한 갈증을 동시에 나누고 있다. 내쳐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나를 무마시킨다. 달려들어 즐거운 답사의 여흥을 나눌 수 있었음에도 나는 숨겨져 있다. 나는 무섭다가 괜찮다 위안하다가 뻔질나게 답답한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돌아온 일상에서의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답사 때 속시원하게 마시지 못한 술을 그대로 따라 마셔본다.

황금박쥐 동굴을 탐사하려 나간 그 아침은 그래도 사람의 길이라도 있었다. 밤새 내린 이슬과 풀을 받아들인 베이지색 바지가랑이는 빨아도 황금색 풀물로 남는다. 영광의 생태공동체 농장은 정글이다. 정글 속에서 보물지도에도 없는 보물들을 묻고 심었다. 황금색 풀물을 들인 바지는 이제 천연 염색이 되어 정글을 그리워하고 있다. 답사 이후 답사의 흔적은 늘 있다. 그런데 이번 답사의 흔적은 생경하다. 생경하여 오래 남는다. 그 먼 국토의 변방까지 금을 캐던 사람들의 일확천금이 놀랍다. 사람의 흔적 드문 영광 생태공동체의 황토는 척박하다. 보여지는 것이 없다. 숨겨져 있어 생명력이고 숭고하다. 그곳에는 황대권 선생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