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원주권 답사.1_기력이 떨어졌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원주권 답사.1_기력이 떨어졌다 / 온형근



<마흔 다섯의 외출>

1. 기력이 떨어졌다.

기력이 떨어졌다. 오늘부터는 정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등산화를 꺼내 놓고 작업화로 사용할 수 있는지 점검한다. 교내를 샅샅이 돌아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힘을 쓰는 일이다. 도움을 받거나 기댈 만한 것은 없다고 여긴다. 순전히 내 힘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없는지 모르겠다. 어디 아픈 사람처럼 차분하다. 아무 욕심도 내지 못하게끔 힘이 없다. 바보처럼 물을 끓인다. 힘들면 차를 마셨다. 또 기댄다. 차를 마시면 달라지는 게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러나 여전히 힘이 하나도 없다. 말할 힘조차 없다. 이런 날 누가 날 툭 건드리거나 괴롭히면 쓰러질 것 같다. 오늘은 제발 나를 있는 듯 없는 듯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진지하고 고요하게 진행해야 한다. 답사 후 이렇게 힘이 빠져 있기는 처음이다. 아주 알찬 답사였다. 골프장에 공문을 보내 답사를 돕도록 하였고, 토지공사에 공문을 보내 토지문학공원의 식재평면도와 시설물배치도를 사전에 제공받았다. 마침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원주시청 관리인이 나와 우연찮게 박경리 선생이 사시던 집을 열고 방방을 걸어다니며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나는 괜히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선생이 쓰시던 여행가방에는 PKL이라는 이니셜이 붙어 있었다. 주방과 주방 옆 테이블에 앉아 보았다. 사용하던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도 보았다. 단단한 목재로 만든 책꽂이도 열심히 사진 찍었다. 그리고 덩그런 책꽂이 한 편에 누가 진열했는지 토지 전집을 찍었다. 열쇠를 가지고 와 공개해 준 관리인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제는 다랑쉬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와 긍정이 어울린다. 왜 이리 힘이 없는지 모르겠다. 단전에서 기가 빠져나간 것처럼 맥이 없다.

차를 마셔야겠다. 우선 차를 마셔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