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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아, 그리고 빠진 곳, 간월암의 경관

by 나무에게 2013. 12. 24.

아, 그리고 빠진 곳, 간월암의 경관 / 온형근



이번 답사에서 꼭 말하고 싶었던 곳이 있다.
그곳은 간월암이다.
조선 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무학(無學)대사가 득도한 곳이다.
무학스님이 창건하여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는 곳이다.
무학스님은 춤출무(舞)자 학학(鶴)자 해서 무학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스님의 부친이 잘못되어 부인을 대신 서산 현감으로 호송하던 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엄동설한에 아기를 출산한 후 출발하였다.
원이 부인이 몹시 피로해 함을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물어 알고
인간의 도리 어찌 이럴수 있으랴하며 곧 사령을 아기 있는 곳에 보내니
큰 학이 두 날개로 깔고 덮어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원이 크게 상서한 일이라하며 부인을 보고 아기 이름을 춤추는 학이라는 뜻으로 무학(舞鶴)이라고 지어준다.
무학이 이십세에 나옹스님으로 인하여 출가한다.
이때가 고려 공민왕 3년 (1353년)이다.
스님은 이곳 간월암에 토굴을 지어 열심히 수행하던 중 달을 보고 도를 깨치시니 나옹스님이 더 배울것이 없다하시며 법호를 무학(無學)으로 지어주셨다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안내 간판이 입구에 있었다.
그러나 글씨는 참으로 알아보기 힘들고 작고 내용이 많았다.
읽을 것이 많다는 것은 답사준비를 사전에 철저히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반갑다.
간월암은 물에 차서 섬처럼 떠 있을 때가 있고, 물이 빠져 육지와 연결되어 있을
때가 있다.
물이 찼을 때의 모습을 못 본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였다.
하루 두번씩 밀려오는 밀물때는 물이 차 섬이 됐다가 썰물때는 물이
빠져 작은 자갈길로 육지와 연결되는 이 섬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주변의 섬들에 에워싸여 바다에 떠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속에 피어난
연꽃 형상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무튼 물이 빠진 상태라 어서 간월암으로 들고 싶어 일행 중 앞장을 섰다.
그러나 간월암 입구에는 커다란 안내방이 붙어 있었고 그 내용은
지역의회와의 마찰로 사찰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내용이었다.

출입할 수 없다고 하니까 더욱 궁금하였다.
간월암에서 멀리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는 주변의 작은 섬들과
바다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부처님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나 역시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문틈으로 삐걱이며 바라보기만 하였다.
일행 중 이주민씨는 그렇지 않았다.
여행 중 사찰 3군데를 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아무 거리낌없이 살짝 문을 열고 대웅전으로 들어가 절을 하는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따라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 왜 들어오지 말라는 곳에 함부로 들어오느냐>고 호통치는 보살을 만났다.
우리들에게 호통치는 게 아니라, 지방의회에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겠지만,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나중에 이주민씨가 나올 때는 아주 부드럽게 잘 나왔는데,
기웃대다 문을 잠시 열다 말고 혼이 난 나와 염충님은 참으로 민망했다.
< 귀신이 문을 열었나 봅니다.>라는 염충님의 말이 아직도 쟁쟁하다.
염충님이나 나나 똑같이 속상해 하였던 것이다.

답사를 다니면서 고마운 것은
소란스럽고 번잡스럽지만 탐방객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넉넉함이었는데, 이곳의 이런 대접은 아무리 그 사연이 남모를 것이라도
심하기만 하였다.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발길은 조금씩 우울했다.
범인으로서는 사찰이 국가의 재산인 줄 알고 있다가,
대부분의 사찰과 사찰림이 사유재산이라는 데서 놀랐던 어린 시절처럼
다시 이런 부분에 대하여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간월암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물론 어느 한 쪽을 택하여 나머지 한 쪽으로 돌아나오면 된다.
하지만 신비스러움은 산 쪽으로 올라가면서 다가가는 것이다.
산 모퉁이에서 움푹 파진 저 건너에 간월암이 있는 아주 조그만 섬이
동그랗게 시야에 들어온다.
가히 기막힌 경관이다.
내 첫 눈에 산 모퉁이에서 바라 본 간월암의 입지는 환상적이다.
팽나무와 느티나무 한수(寒樹)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잎이 모두 지고, 겨울 눈의 잔잔한 모습들이 가지 끝에 얽혀
이루어낸 둥그런 수관의 실루엣이 저녁 노을을 받아 일렁이고 있었다.
결국 간월암 경내에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돌아서면서도 연신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만들어내는 섬을 호신하는 듯한 실루엣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꾸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도를 깨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가득하였다.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경관으로 남는다.
다시 찾을 일이 있을 것이다.
아끼는 마음으로 애써 간월암 경내에서 바다를 바라보지 못한 것을
위로한다.
돌아오는 길에 서산 어리굴젓을 하나 샀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여러 번 음용하였다.
어리굴젓을 찾는 아침은 전날의 과음을 탓해본다.
그러나 어리굴젓 속에 여전히 간월암의 소리지르는 보살이 있고,
그 보살을 덮어 주는 간월암의 아름다운 경관이 있다.
어리굴젓이 떨어지는 날까지는 간월암의 경관에 몸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