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박물관은 왜 공부하기 좋을까

한국건축박물관은 왜 공부하기 좋을까 / 온형근



답사를 떠나기 전에 동료 중 한 분이 추천해준 곳이 있었다.
그 분은 내가 공부한 전공이 조경이다 보니
조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꼭 한 번은 들러 볼만한 곳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곳이 예산의 덕산면에 위치한 <한국건축박물관>이었다.
최근에 많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시장, 공연장 들이 서울을 떠나고 있다.
번잡한 도시보다는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전시, 공연 등이 더욱 활발할 것으로 보았을 때, 이런 변화는 안목있고
식견있는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연친화적인 공간이라면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일진대
이곳 예산의 덕산에 있는 <한국건축박물관>은 그 일반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있다.

수덕사를 가는 길에서 웅장한 고건축형식의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외관은 엉성하기만 하였다. 외관을 먼저 보아야 하는 내 시선에도
문제는 있겠지만, 경관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는 것 중 첫인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일반 주택을 방문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첫인상이 그만큼
경관의 이미지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겨울 초입에 방문하였지만, 아직 개발 중인지 여백이 많고
정열되지 않은 모습이다.
곳곳에 조경을 하고자 심어 놓은 나무들도 그렇게 시설물과 조형물들이
제자리라기 보다 우선 꽂혀 있는 듯한, 임시로 하적시켜놓은 듯한 형상이다.
조만간 전문가의 눈으로 제대로 제 위치에서 제 모습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 다 짓지 못한 전시관들이 있고, 그 예산 확보 등 많은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어 보였다.

이곳은 한국문화재보전수리기능협회장인 전흥수님이 사재 1백억원을 털어
시작한 곳이다.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분명 엄청난 예산이 아직도 더 요구되고
있는 실정의 박물관이다. 따라서 앞으로 박물관의 남은 일정과 계획을 위해
국가적 관심과 예산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엉성함은 사실 아무 문제가 없다.
수덕사를 지나다가, 온천지를 경유하다가 잠시 휴게소처럼 차를 세우고
기웃대더라도 좋다.
사실 우리처럼 목적지를 찾아 이곳에 온 사람보다는
아직은 지나다가 들린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한결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전시관에 들어 온 분들의 높은 관심 정도였다.
어쩌면 큰 기대를 가지고 일부러 공부하러 찾은 사람과
지나다 잠시 들려 기웃대다 전시관을 들린 사람의 반응이 다를 수 있다지만,
공통된 점은 대단한 관심도였다.

나 역시도 산발적으로 답사를 다니면서 잠시 공부하고
듣고, 돌아와서 일상에서 다시 묻히고 하던 고건축에 관한 공부들이
실제로 전시관 안에 축소되어 모형으로 만들어지고 그 곳곳에 전통건축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들이 푯찰로 제시되어 있어 매우 고무적인 학습을 할 수 있어서
신났다.
부석사도 있고 수덕사 대웅전도 있었다. 전시관에는 사찰 등 고건축의 미니어쳐와
건축에 쓰였던 기구 등 우리나라 건축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전시되어
시대별 건축발달사를 보여준다.
이곳은 한국건축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전수장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얼과 문화를 체험하는 산 교육장으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건물의 단면을 자르고 그 명칭을 부착하여 공부할 수 있는 것이 흔치 않다.
전통조경답사에서도 늘 고건축을 만나면 세부적인 학술활동을 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곳에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공부하였던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하며 쾌재를 부를 수 있었다.
여전히 분야마다의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이 작고 소박한 꿈들이
실현되고 칭찬되어지고 권장되어져야 할 것이다.
큰 정치를 실현한다는 사람들의 국고 탕진과, 사재를 탕진하며 커다란
꿈을 펴 놓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비교가 가능할까.
개별적인 삶의 질과 추구하는 욕구, 그리고 희망이 다르겠지만
이처럼 자신이 살아왔고, 살아 온 것을 확인하는 이런 작업들이
곳곳에서 다양하게 펼쳐질 때가 살만한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건축박물관에 들렸던 그 날의 방문객들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뭔가 뿌듯한 앎을 하나씩 얻었다는 그런 얼굴들이었다.
이처럼 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살아있는 체험과 공부는 평생을 두고 각인되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배움에 대한 감탄사로 박물관 마당은 훈훈했다.
고개를 들고 처마끝을 다시 쳐다보고, 마당을 내려보며 나름대로 흡족해 한다.
아직 외관은 엉성하고 미비하지만,
본질적인 내용이 이 정도로 사람들을 환호짓게 한다면
한국건축박물관의 출발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건축에 대한 지식들이 쉽게 나누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적 식견을 나눌 수 있다면
한국건축박물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람하게 땅을 딛고 하늘을 우러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