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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의경011-意景

by 나무에게 2013. 12. 23.

의경011-意景 / 온형근



수련 중에 의경意景이란 말을 듣는다. 눈을 지긋이 감고 뜻으로 풍경을 지녀라는 것일게다. 마침 조희룡 전집에 의경에 대한 표현이 있다. 초묵과 담묵에 대한 내용이다.

... 고요히 나무ㆍ돌ㆍ구름ㆍ놀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늙은 나무와 여윈 돌은 초묵이 아니면 그 고경古勁하고 창로-老한 의경意景을 표현할 수 없고, 변화하는 구름과 환상적인 놀은 담묵이 아니면 착잡하게 펼쳐지고 점점이 엮어진 뜻을 얻을 수 없을 성싶다....

- 조희룡 전접2,한길아트-58에서

뜻으로 마음으로 경치를 그리는 일은 내 안에 풍경이 많아야 한다. 막상 뭔가 떠올리려고 하다 보면 캄캄한 바다일 경우가 있다. 지금 내 수련은 이론과 호흡과 동작이 따로 있는 단계다. 함께 짜맞춰지지 않는다. 거기다 의경까지 따로 논다. 구조화가 되지 않아 설다. 그러니 송이를 먹으면 속이 따뜻하여지고 옻닭을 먹으면 훨씬 느낌이 다르고 단약을 복용하면 성취에 이르는 고갯길을 수월히 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멀기만 하다. 의경의 본질은 곧 '뜻'이다. 뜻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많은 일들에게 뜻을 심었다. 밭을 가는 심정으로 참 오랜 시간을 공들여 뜻을 지니고 심고 가꾼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일순간에 허물어지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어떤 일들에게 의경을 바칠 때는 속성이 보이지 않을 때다. 어쩌다 그 일들의 속성이 벗겨지면 달라진다. 물론 더 아름다운 풍경과 속내가 있어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에 다시는 몸 담고 싶지 않은 구취 가득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의경으로 가득찰 수 있고, 보지 않아도 뻔한 더럽고 냄새나는 경치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을 할 때는 속성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나마 견딜만 하다.

아름다움이란 평생 추구하는 화두다. 시인의 갈 길이고 본질에 이르는 도의 신작로다. 의경은 아름다움을 갈고 뿌리며, 가꾸고 거둬들이는 촉매다. 의경이 있을 때 풍경은 살아난다. 풍경이 풍경으로 실재할 수 있는 것은 의경이라는 우주적 사유의 지평이 열릴 때다. 수련의 길은 아직 멀다. 의경도 훈련이다. 그런데 갑자기 캄캄해지는지 모른다. 수련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스러워질 때쯤이면 의경 자체가 그윽해질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내게 풍경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질적 삶과 늘 함께 하였다는 것을 떠올린다.

한때 일을 통하여 인간관계의 속성을 읽었다. 그때는 모든 것을 나 하기 나름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며 일을 한다. 무지하게 무식한 방법이다. 일을 통하여 내게 얻어지는 어떤 것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래야만 내가 하는 일의 진정성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몸이 망가졌다. 병원에 입원하고 큰 홍역을 치룬다. 몸이 시키는 대로 이끌다가 일과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조용히 숙지한다. 배움은 작지만 소중하다. 내주변의 본질이 훨씬 수월하게 보인다. 이 또한 좋은 게 아니다.

주변의 본질이 보이면서 의심한다. 불교에서는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왜라는 화두를 지녀라'고 한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아도 될 것들이 보이는 것은 힘들다. 받아들이고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울러 시간은 주변과 나의 격차를 넓힌다. 나이 쌓임과 정비례하게 사람들의 아집도 견고한 입지를 굳힌다. 손사레를 치게 한다. 여기 저기서 술수와 교활이 나누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한 판을 벌이는 거다. 짐짓 활달한 판이다. 판에서 빠진다. 숨을 쉴 수 없다. 호흡이 다르고 동작이 다르다. 그들과 본질적으로 의경이 다른 것이다.

초묵焦墨은 먹물을 되게 갈아 필치가 타 메마르게 나타내는 법을 말한다. 담묵淡墨은 묽게 쓰는 먹물, 혹은 그런 먹빛을 말한다. 내가 사용하는 의경에도 초묵과 담묵이 있다. 평상시에 초묵으로 일관한다. 초묵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심정적으로 건조하다 스스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새로운 관계에 든다. 담묵의 관계를 이룬다. 일상적인 사람과의 관계는 초묵이다.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상처를 나누려 하지 않음이다. 그리고 나서 담묵이다. 고르게 묻어나나 진하지 않다. 여기까지가 내가 지닌 의경이다. 더 진해지기 어렵다. 색채를 입힌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의경에 이르기가 험로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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