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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혹사012-酷使

by 나무에게 2013. 12. 23.

혹사012-酷使 / 온형근



새로 5기로 명명된 백일축기百日築基팀이 따로 모였다. 오늘은 5명이다. 원장님이 9월부터 시작되는 일정을 알린다. 보이차를 마신다. 보이차는 몸을 따뜻하게 보하는 것이라 한다. 그에 비해 다른 차들은 버리는 것 즉 사瀉라고 한다. 나도 보이차를 즐겨 마신다. 다만 그럴 수 있겠다는 수긍이다. 단정짓고 말기에는 차의 세계 또한 매우 깊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소화하여 내 것이 되기 전에는 수긍 정도로 충분하다. 남이 소화하여 풀어 낸 것을 마치 내가 소화하여 향기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없는 노릇이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오늘은 도반들이 많이 참석한 날이라 5기와 기존 도반들을 나누어 설법함을 짐작한다. 벽에 일정표를 본다. 9월3일 관악산, 9월24일 운악산이라 써 있다. 거참 예상대로다. 9월3일 마라푼다, 9월24일 다랑쉬와 겹쳤다. 중간에 추석이다. 9월은 매우 기운이 좋은 때라 산행 수련에 적격이라는데 아쉽다. 9월부터 수련 정도를 보고 와공에서 반좌 수련으로 이행한다. 일반반이 수련하는 화, 목도 필요하면 수련하는 것이 좋다. 몇 가지 사항과 나를 겹쳐본다.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은 멀어지기로 한다. 억지로 다가서지 않으려 처음부터 작정하였음을 떠올린다.

회장님의 설법에 귀기울인다. 5기생들을 일일이 체크한다. 다만 내게 아무 말 없다. 수공, 수면공, 혹은 와공에서 반좌 정공 수련으로 이행하는 데 간단한 시험을 치룬다. 하단에 관계된 것이다. 하단을 이루는 사람은 반좌 수련이다. 글쎄 내 경우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또한 나를 급하게 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도가의 분위기에 입문한 정도이다. 도교가 아닌, 도가라고 못박는다. 따라서 인연이 있으면 이어질 것들이라고 불교적으로 현상을 이해한다. 그만큼 적극적인 삶의 형태에 지쳐 있다. 아니 의식적으로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관조일 것이다. 후사가 있는 관조, 그 후사의 내용은 없다. 지금부터 만들어 가고 있다.

회장님으로부터 너무 오랫동안 폐를 혹사시켰다. 사람들은 보통 흉식호흡을 하다 수련 등을 통하여 복식호흡을 하는데, 사실은 피부호흡이 가장 좋은 것임을 듣는다. 혹사酷捨는 독하게 부려 먹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혹사시킨 게 많다. 특정 일과 관념에 치중하여 발달된 셈이다. 어떤 부위에 집중하여 치사량에 가까운 다량의 정성을 쏟아 부은 것이다. 고르게 균형과 조화 있게, 조금씩 분할 배당하여 미량의 숨결을 나눈 게 아니다. 요즘 투자에서 강조하는 포트폴리오 구성이어야 했는데, 배팅을 너무 한 곳에 치우친 것이다.

어떤 혹사였는가. 관념 혹은 신체의 어느 것, 아님 둘 다? 기본적으로는 '일'의 혹사다. '일'의 개념은 광범위하다. 개인적으로 '일'이라는 말 자체를 신성시한다. 일의 바탕을 성의로 삼는다. 여기서 성실로 확대되고 성실을 위한 근면을 추구한다. 근면은 꾸준함이다. '성의 있는 실천과 꾸준함'을 일의 본질로 삼는다. 때문에 직업 의식 역시 무실역행務實力行이다. 나무를 기르는 방법만 알고 가르키는 게 아니다. 밭에 나가 풀을 뽑고 가꾸고 땀을 흘리며 신체의 곳곳에 던져지는 아리고 붓고 쑤시는 것을 그대로 내 것이라 무육撫育한다.

신체의 혹사는 견딜만 하다. 산림 경영에 무육간벌이 있다. 간벌間伐은 개벌皆伐과 달리 나무의 생육과정에서 솎아 주는 작업을 말한다. 무육간벌은 나무를 기르기 위한 벌채다. 나무의 간격을 적당하게 안배하고 폭목이나 형질불량목, 고사목 등을 벌채하여 우량임분으로 기르기 위한 벌채다. 몸을 무육간벌처럼 솎아내준다. 일부러 몸을 만들며 혹사하는 헬스보다야 생산적이다. 몸의 혹사는 결국 관념의 혹사에 닿아 있다. 내 경우에는 '최소한~'이라는 수식어에 몸의 혹사가 잇대어 있다. 관념의 혹사가 몸의 혹사를 부리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한다. 제도制度다. 제도는 억제할 것들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제도는 제도를 낳는다. 제도의 어미도 제도고 자식도 제도인 연유다. 도가의 사상 또한 제도다. 그 안에서 자신을 이루는 것은 제도 바깥이다. 너무 상이한 성취과정과 결과가 증명한다. 제도권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제도권에 몸담는다. 탐색이다. 결국 혹사는 제도의 혹사에 귀결된다. 제도에 물든 상태에서 인공염색인지 천연염색인지조차 분별치 못한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못하고 너무 치우친 제도에 깃들었다. 많이 자유롭다 했는데 속셈이 있었나 보다. 오늘 또 하나를 지운다. 이또한 명상에 이르려는 속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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