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상기013-上氣

by 나무에게 2013. 12. 23.

상기013-上氣 / 온형근



꼭 한 달이다. 일찍 도착하여 수공을 하는데 묘한 체험을 한다. 왼쪽 발끝은 지면에 닿아 있는데 다른 신체는 공중에 떠 있는 경험이다. 잠깐 어지럽고 두려웠다. 순간적으로 짧은 풍월이 스친다. 개념도 내용도 뼈대도 없이 그렇게. 정신 차려 다시 살피니 여전히 왼쪽 발바닥끝은 지면에 있다. 왼쪽으로 몸이 틀어지며 떠 있는 것이다. 대략 왼발꿈치를 중심으로 30도의 기울기로 모로 누워 떠 있다. 어어 하다가 돌아온다. 이게 뭔가? '거참'이다. 천상 묻어 둘 수밖에 없다.

도인체조 후 수공을 다시 하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수공 내내 의식이 명료하다. 지금까지는 어느 순간 수마에 나를 내 놓곤 했다. 오늘은 전혀 수마가 찾지 않는다. 그 뭐냐? 화두라도 잡아야 할 참이다. 대신 잡념이 넘친다. 벌초를 못한 것이 내내 걸린다. 봉분과 납골과 수목장 등 근래에 떠 올린 장례 방식도 의식으로 흐른다. 뭔가 화통하게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수련이라고 누워 있다. 진실은 힘이 있는가. 의식이 튄다. 대상은 있어도 따져 보기에 구태인 진실에 의식이 모인다.

다른 날보다 유난히 도반이 적다. 국선도를 하는 분들이 모임이 있어 빠졌다 한다. 누구 누구라고 해도 알지 못한다. 그냥 국선도 하는 분들도 금선학회에 있구나 정도다. 그런데 끝말에 국선도 회장님도 금선학회에서 수련을 하러 온다고 했다. '거참'이다. 오늘은 추석 성묘 다녀 오는 날, 고향의 산에 꼭 오르라는 말씀을 하신다. 회장님은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사실이다. 제사밥을 영이 와서 먹은 후 사람이 먹으면 푸석한 맛이 된다. 조상이 드시고 간 것이다. 부모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신다.

마치 수공 때 이 생각 저 생각 했던 것이 들춰내진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속으로 다잡는다. '거참' 어쩌다 내 속을 들켰나 싶다. 어쩌면 진정성이라는 것은 사유와 기법과 융통성을 지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도'이거나 '자연'일 것이다. 도법자연道法自然과 같아 사람은 땅의 법칙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법칙을 하늘은 도의 법칙을 도는 자연의 법칙을 본받아야 하는 이치에 진정성이 있다. 수공 중 모기가 팔뚝에 집을 짓고 있기에 참다가 움직여 긁었는데, 회장님이 사범님에게 에프킬러 좀 뿌려라 하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임이 그대로 널려 있다. 책 4권을 구입한다. 금선기공과 도덕경석의 그리고 대도행이다. 영보필법은 절판되어 없다. 진작 금선기공을 보았으면 했는데 늦게야 접한다. 책 부록에 있는 도인체조의 그림이 너무 좋다. 혼자 도인체조를 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다. 그림만 보아도 할 수 있다. 어제 마신 술로 유난히 땀을 낸다. 돌아오면서 수교 이전에도 중국을 많이 다니시면서 중국 사람들에게는 상기병이 없다고 하신 회장님 말씀을 되새겨본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어야 하는데, 상기上氣는 위험한 몸을 이룬다. 아지 못하는 곳에서 아프고 힘들고 하던 것을 그래 이게 '홧병'이라는 것이다. 홧병이라 명명한 그 자체로 즐거워했다. 물론 홧병과 상기는 다르다. 그런데 상기병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상기되는 것은 또 뭔가. 자본주의에서 사는 것 자체가 상기병을 유발한다. '바쁘다 바뻐'가 상기 아니겠는가. 진실이 무언가를 따지며 고통스러워 할 때, 이는 곧 화두가 되었다. 생각은 화두 앞에서 꼼짝 못한다. 화두 이외의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았다. 꽉 막혔다. 그게 내가 지닌 질병이다.

누가 '마음보기'를 하라 한다. 있는 마음을 보고, 일어난 마음을 보고, 일어나려는 마음을 보고, 그 아는 것(보고 있는 것)을 아는 마음을 보아야 한다는 4단계 마음보기다. "우리는 화를 냅니다. 처음에는 지금 화를 내고 있는지를 보고, 이어서 화가 일어나고 있는 그 때를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이 화가 어디로 가려는지 즉 내 마음이 어디로 가려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이후의 마음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화는 가라앉고 평온해 집니다.” (채한기,화 안내는 선근 이 땅에 심으며 정진, 법보신문, 2005-04-13/799호.)

'::나무와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로015-通路  (0) 2013.12.23
의심014-疑心   (0) 2013.12.23
혹사012-酷使  (0) 2013.12.23
의경011-意景   (0) 2013.12.23
창문010-窓門  (0) 201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