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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의심014-疑心

by 나무에게 2013. 12. 23.

의심014-疑心 / 온형근



형은 술을 마셔 흐려졌다고 했나요? 난 흐려지지 않던데요? 화두를 없애려고 해요. 그놈의 '농업교육'이라는 화두와 '진실'이라는 화두를 버리려고요. 그 두 놈은 나를 상기병 또는 홧병으로 이끄는 첨단이더군요. 미친 놈을 만들지요. 생각이란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해야 마땅하지요. 화두란 놈은 내 머리를 딱딱한 콘크리트로 바꾸어 놓더군요. 화두 이외의 어떤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니 웃기잖아요. 범인의 생각이란 물 흐르듯 아무 때나 들락거려야 하잖아요. 씨펄...그래서 그 두 놈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술을 마셨답니다. 사실 형과 함께 먹을 유혹이 몇 차례 있었지요. 무척 망설였습니다. 결국 혼자 마셨지요. 아직 내가 설어서요. 이런 상태지요. "오늘 모이지 말자고. 당분간 사람들과 만나 술 마시고 떠들고 싶지 않아. 좀 많이 가라앉고 새로워지면 그때나 자연스럽게 만나자고... 지금은 아직 내게 날이 서 있어서 그래. 꼭 전해 주고, 특히 ㄱㅇㅇ에게도 전해줘. 좀 나중에 만나자고... 지금은 입을 열면 너무 떠들 것 같다고 말이야.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며..." 근데 술을 마시면 예전처럼 흐려져야 하는데 맑아지네요.

氣治療라고 말하기로 했어요. 홧병을 내리는 일은 치료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작은 소망이지요. 100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서원은 어디있는지 살펴보고 있어요. 아니 어제는 술 마시면서 수행하는 것은 왜 안되는가를 적극적으로 궁구하였지요. 마치 "나는 달라, 술을 마시면서 수행에 이를 수 있어." 하는 식으로요. 아니지요. 수행이란 하나의 분명한 약속인데 그런 고무줄 놀이는 곤란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도를 이루면 어쩌나요. 도를 이룬 사람을 세상에서는 뭐라고 부를까요.

수련 후 몹시 갈증이 나요. 보이차를 서너 잔 마시지만 가라앉지 않고요. 녹차를 만들어 들고 다닌다고 하면서도 여태 실천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온 음료에 맥을 놓고 있어요. 그러나 거꾸로 왕대포를 떠올렸지요. 11시 경에 한 주전자 마시는데 보통 낭만이 아니지요. 다만 담배를 열심히 피우는 혼자 있음의 여파로 목이 아파요. 아마 장기의 어느 부분에서 목구멍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요. 따갑다니까요. 이런 것은 들어 주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마시고 나서 성벽을 따라 아주 천천히 돌지요. 성벽만큼 의심이 휘몰아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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