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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창문010-窓門

by 나무에게 2013. 12. 23.

창문010-窓門 / 온형근



'창문을 열고 받아 들여라'한다. 바깥은 비가 온다. 서둘러 이르게 도착하여 창을 열고 자리에 앉는다. 뒷목이 뻣뻣하다. 목을 움직여 푼다. 꾸준히 뒷목으로 신경이 쓰인다. 내가 할 수 있는 동작 중 가장 선호하는 동작이 목을 푸는 것이다. 반좌를 하면서 목을 움직이고 있다. 부원장님은 수공을 하라고 한다. 수공도 하지만 기회가 생겨서 뒷목 사정을 말한다. 경추 쪽을 만져주더니 고개를 좌우로 털어 준다. 소리가 나도록 교정된다. 시원하다. 그러나 다시 뒷목이 신경쓰이며 지속적으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올해 처음 뒷목에 증후가 발생했다. 한달 여를 힘들게 치료하였다. 어떤 일에 신경을 세우면 다시 통증이 생긴다. '몰두'하는 정도만큼 뒷목이 땡긴다. 손에 기운을 넣에 뒷목을 만진다. 수없이 목을 움직여 푼다.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뭔가 바라보는 순간부터 아파온다. 가장 나쁜 것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줄였는데도 여전하다. 이제는 책을 보는 것도 만만찮다. TV는 아예 외면한다. 그래도 할 일 없는 날은 가까이 다가간다. 누워서 보는 TV는 해악이다.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들로 습관되어 있다.

핸드볼을 가지고 미추에서 경추까지 누워서 비빈다. 방금 부원장님이 알려준 것이다. 옆에 일찍 오신 분이 먼저 한다. 나처럼 뒷목이 아프다 한다. 나보고 해보라 하는데 쉽지 않다. 미추 위에서 숨통이 확 막힌다. '혈압이 높은가 봅니다', '간이 좋지 않나 봅니다' 거참 들을수록 얄밉다. 한의사인가 보다.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핸드볼을 구하여 집에서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누구 소개였나고 묻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슬쩍 답하고 만다. 굳이 설명할 정도의 친근감은 없다. 저절로 알게 되는 관계에 집중할 것은 없다.

'집중' 역시 뒷목에 영향을 미친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목에 대하여 꾸준히 자극을 준다. 수련에는 도장이 필요하다. 혼자도 할 수 있지만 도장을 찾는 근거가 된다. 옷을 갈아 입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경건함이 깃든다. 어떤 일에 임하든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은 기운이 되어 돌아 온다. 도장은 그런 의미에서 임장감에 이르게 한다. 생활에서 이뤄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번다한 일상이 여전히 내 안에서 활개치고 있다. 내 안을 털어 내는 데에도 내 안을 맞이할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가.

땀이 덜하다. 동작도 커진다. 조금씩 익숙해지는 도인체조다. 작은 동작에서 큰 동작으로 전이되고 있다. 몸을 움직여 하는 수련은 훈련처럼 꾸준한 반복이 요체다. 거뜬히 도인체조를 마치고 수공에 든다. 아마 9월1일부터 시작되는 100일 축기築基에 가서야 제대로 수련법이 전수될 것이다. 오늘 원장님의 음성은 깊고 그윽하다. 잘 모르지만 어떤 기운이 충만해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벽곡 수련 후 원장님에게 또 다른 창문이 열린 것일까. '창문을 열고 우주의 충만한 기를 받아 들입니다' 창문을 열라는 주문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창으로 둘러 싸여 있는가. 담장을 쌓고 있는가. 담장을 허물고 창을 내며 풍경을 읽는다. 그러나 그 창은 수시로 닫힌다. 창문의 열고 닫힘은 자의적이다. 창을 허물어야 한다. 자의적으로 열고 닫고 하는 창을 무위로 되돌린다. 물아物我의 분별이 없다면 담장도 창도 분별되지 않을 것이다. 열어야 할 창마저 없다면 좋겠다. 지금은 창문을 여는 데에도 힘들다. 창문이 어디 있는지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어느 쪽 어느 창문을 어찌 열 수 있는가. 의념마저 틈을 잇지 못한다.

스스로 위중한 몸이라 여겼다. 업무를 놓고 한 짧은 시대의 증언들을 묻는다. 묻는다는 말이 이처럼 적절한 적은 없다. 송별식을 포함하여 각종 회식이 줄을 잇는다. 그 한 가운데에 내가 있다. 일종의 스캔들이 아닐까. 연예가 중계같은 가십꺼리일 것이다. 술 한 잔 마시면서 슬쩍 심리를 앞서가며 추스레를 넣어 주면 불콰해진 감성에서 실타래 풀 듯 뭔가를 주워삼키며 떠들어 댈 것이다. 그럴만한 소질을 지녔다. 알기 때문에 발길을 닫는다. 내게 수련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운세를 가졌다. 수련 시간 내내 많은 전화가 찍혀 있다.

멀찌감치 숨을 돌린다. 내 안은 숨겨져 있지만 시퍼런 날이 그대로 세워져 꿈틀댄다. 꺼내면 곧바로 흉기가 될 날이다. 무디어지고 녹슬어 쓸모 없을 때까지 버려둔다. 새로운 상상력이 그 위에 뿌리를 내린다. 상상력에게 말을 걸고 즐겁게 친구하며 기분 전환을 발견한다. 가장 거칠고 미개한 자연에게서 숨결을 찾는다. 태만과 무위의 각성을 보류하는 것이 온화한 훈련이라 믿는다. 그대로 태만하고 무위여야 한다. 창문이 있어 하나씩 열고 닫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무방비함으로도 정기精氣가 즐거워질 것이다. 창문을 열고 닫는 일 없는 즐거움은 순수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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