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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평시008-平視

by 나무에게 2013. 12. 23.

평시008-平視 / 온형근



유난히 크게 땀을 흘린다. 내가 위치한 곳의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은 에어콘과 선풍기가 자고 있기 때문일까. 뚝뚝 수련장 바닥으로 굵은 땀이 산발적으로 수직낙하한다. 수련 도중 밟힌다. 반팔 소매와 배를 덮고 있는 옷가지로 땀을 훔친다. 더러 맨손바닥으로 머리 뒤와 이마를 가져온다. 그득한 것을 하의의 적당히 손 닿는 곳에 닦는다. 오늘은 옷을 세탁하기 위하여 집에 가져갈 것이다. 그것은 괜한 위무였다. 옷을 담아 올 준비가 되지 않아 그냥 두고 왔다. 창문 열린 옷장에서 저절로 마르고 날려 맨땀의 흔적이 배게 될 것이다.

도인체조의 굴신 운동이 다른 날과 다르다. 도인체조가 좀 수월해진다. 갑자기 골목 끝을 돌다가 만나게 되는 새로운 풍경처럼 느낌이 다르다. 고갯 마루에서 만나게 되는 멀리 터져 있는 경관을 바라보듯 도인체조가 달라 붙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날보다 크게 땀을 흘린다. 유난하다고 치부한다. 꼭 하나 따라가지 못하는 게 있다. 엎드려 두 발을 꺾어 올린 다음 두 손으로 각각의 발목을 잡은 채 목을 뒤로 젖히고, 발도 꺾인 채 뒤로 젖히는 동작이다. 위 아래로 흔들어 주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 거기에다 좌우로 흔드는 것은 영 안된다. 좌우로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좌로 세워지고 우로 세워지다가 뒤집는다.

나는 거기서 멈춘다. 몸의 비상사태를 풀고 조용히 돌아눕는다. 그리고 다음 수순을 기다린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놓쳐야 할 것이 있다면 순순히 받아 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다음을 기약한다. 마음 한 편으로 접어 둔다. 아예 떠나갈 동작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다. 오늘 도인체조가 남다르게 수월해졌듯이 이 동작도 골목을 돌아 틀듯 다가 올 것이다. 작정作定의 순수한 신뢰가 팽배해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자전거 타기도 잘 된다. 주먹을 허리 밑에 대고 간신히 받쳐 가면서 했었다. 오늘은 공중 끝까지 두 다리가 직립한다. 허리 밑을 양손으로 간단히 받친다. 균형이 있다. 자전거의 페달이 발바닥에 부드럽다.

따지고 보면 호흡이 엉망이다. 호흡과 동작이 따로 논다. 의념이 하나로 뭉치지 않는다. 처음과 달리 흐르던 땀도 접어 든다. 땀이 흐른다는 것에 의념을 많이 빼앗겼다. 도인체조가 끝나고 반가좌 수련에 들어간다. 난 또 눈치껏 수행을 따라한다. 초보의 뒷자리로 돌아 가면서 두 분과 인사를 나눈다. 심교수님의 얼굴은 여전히 화색이 돈다. 와공을 하는 중인가보다라고 말을 건넨다. 수공인지 와공인지 헷갈린다. 따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그대로 반좌로 따라 간다.

회장님을 수행하는 분 중에 반좌를 이끄시는 분이 있다. 매우 자세하다. 평시라는 말을 듣는다. 미간으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반짝이는 것을 보고 신광으로 모은다. 내게 의념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한 분이다. 물론 중간에 회장님으로 소리가 바뀐다. 하지만 다른 수련까지 이루다가 금선학회로 오셨는지, 본디 학구적이신지 자세한 설명이 좋다. 시작한지 얼마 안된 나로서는 이 분이 이끌어주는 수련에 공력이 모인다. 의념과 평시 역시 여기서 도출되었다. 아주 멀리 수평선까지 투시한다. 수평선 저 끝에서 빛을 모아 미간, 신광으로 이끈다. 그리고 두 눈동자로 굴려 떨어트려서 코끝, 가슴, 하단전에 모은다.

다시 사람숲으로 든다. 곧 거취가 결정된다. 나는 짐을 추려 마음 속에 정해 둔 곳으로 옮기고 정리해야 한다. 당분간 왜 그만 두었는지에 대한 시선이 있을 것이다. 그래 평시를 익혀두려 한다. 일상에서 평시平視는 평안平顔이 된다. 평안의 내면에는 수평선이 있다. 반짝이는 빛이 있다. 그 끝에 떠오르는 몇 개의 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의 장면에 집중한다. 그리고는 코끝, 가슴, 하단으로 이으며 전환한다. 일상이 이 정도의 성취라면 평시는 커다란 수행이 된다. 그윽해진 꿈에 이르는 것이다. 가끔은 눈을 감고, 가끔은 눈을 살짝 뜨면서 일상과 교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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