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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화색007-和色

by 나무에게 2013. 12. 23.

화색007-和色 / 온형근



화색이 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렇다. 기계는 기계답다. 사람은 사람답다. 그래야 된다고 여긴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화색이 돌 때다. 기계가 기계다운 것은 둔탁을 지녔을 때다. 거리의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의 디자인을 본다. 인간공학이라는 이름을 쓴 디자인이 활개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자동차는 가장 원시적인 기계의 모습을 지녔으면 싶다. 투박하고 질감도 거칠면서 분명하게 사랑스럽지 않아 꼭 쓸 일이 아니면 가까이 하기 싫은 기계덩어리였으면 싶다.

사람이 자동차를 사람보다 사랑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윤기가 돈다. 그 윤기는 세차를 하고 나서 덧칠하는 그런 윤기와 다르다. 시간이 되었는데 도관에 몇 분 나오시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목을 풀고 사색과 명상을 위한 자리잡기를 꾀한다. 그야말로 꾀하는 것이지 어떤 형태를 이룬 것은 아니다. 아직이다. 하지만 내 식으로 시간과 함께 가는 수련의 형태를 끌어내고 있다. 명상에 이르기 전에 명상으로 인도하는 도인체조를 시작한다. 오늘은 앞줄에 설 수밖에 없다.

목에서 허리와 고관절로 내려오면서 굴신 운동을 하면서 뻣뻣해진 온 몸의 경락이 툭툭 고통으로 전달된다. 굴신 운동으로 내 뒤에도 도반들이 점점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숙이는 일은 아직 어렵다. 조금씩 늦은 도착과 수련 동참이 많은 날이다. 그 날의 기운이 그렇게 작용할 수 있겠지 싶다. 요즘 내게 많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는 의지가 기승한다. 나타난 현상이 낯설지 않다. 아주 자주 일어났었던 일로 받아진다. 그러다보니 내 안의 기운이 땅 속으로 쓰윽 빠져 나간 듯 하다. 실제로 기운이 없다.

슬쩍 술을 먹지 않아서 술기운이 빠져나간 것 아닌가 싶다. 혼자 생각하는 일은 자아를 벗어나지 않는 도취를 띤다. 기운이 빠졌으니 나타난 현상 앞에 얼른 수용하는 태세가 예쁘다. 자고로 예쁜 것은 글이든 사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의 본질이다. 내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고통과 미련과 그리움까지도 함축한 것이다. 결국 나의 역정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길에 나서 있다. 내 시 역시 내가 규정해 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여정에 있다. 즉각 반응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에서 한발짝 멀리 떨어져 늦게 반응하고 그대로 수용하여 녹여버리는 지금의 나는 예쁘다.

도인체조가 끝나고 초보자로서의 제자리로 슬금슬금 나선다. 그때 심교수님의 모습이 환하다. 인사를 나누는데 눈길을 옆으로 돌리시면서 누군가를 바라보게끔 한다. 그랬다. 오랜만에 박경복씨를 만난다. 경복궁과 창덕궁 답사에 함께 했다. 그때는 위원장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다니던 회사의 불편타당함으로 고민하던 때였다. 그리고 수련의 성취를 얻어 소주천을 이룬 분이다. 수련기를 읽은 적이 있다. 반갑게 손을 잡았다. 서로의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오간다. 심교수님은 그윽히 웃으신다. 도력이 깊은 분은 회장님도 그러하다지만, 심교수님은 내게 깊은 도력으로 와 닿는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는 얼굴 가득 화색이 만연할 때다. 화색和色은 온화한 얼굴빛 혹은 얼굴에 드러나는 환한 빛을 말한다. 그래서 화색이 돈다라는 표현을 쓴다. 얼굴로 표현되는 것이되 얼굴이라는 우주를 돌아다니는 기운인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처럼 화색이 가득하여 얼굴 전체에 환한 기운으로 충만하다면 살만하다. 생동이다. 화색이 도는 세상은 생각만으로도 윤기 가득하다. 화색이 도는 세상을 위하여 수행한다. 내 안의 바로잡음과 깨달음이 얼굴로 나서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워져야 하는 화색을 화두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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