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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작정004-作定

by 나무에게 2013. 12. 23.

작정004-作定 / 온형근



얼마전에 메멘토라는 비디오 영화를 보았다.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다. 레너드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낸 범인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메모와 문신을 사용하게 된다. 즉, 묵고 있는 호텔, 갔던 장소, 만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고, 항상 메모를 해두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며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기억마저 변조되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내가 그 영화에서 기억하는 말이 있다. <기억을 못한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수련이 끝나고 나서 하루를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 기억이라는 것이야말로 기록이 아니라 해석일지 모른다. 우환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우환(憂患)을 집안에 병자가 있어 겪는 근심이라고 되어 있다. 회장님은 수련 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우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그 건강잃음이 서로에게 전이되어 두 사람 모두 건강을 잃게 된다. 한 가정에 부부가 모두 아프면 그게 곧 우환이다. 따라서 수련을 열심히 하여 소주천, 대주천이 열리면 그 가르침을 나눌 수 있다. 생활 속의 도를 추구한다는 명제의 핵심이 되는 말이다.

맑고 투명하며 정화된 수련이 끝나면 녹차로 마무리한다. 산행을 다녀와서도 녹차로 마무리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익히 들었던 산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토요일 오전 10시에 관악산을 출발한다. 수련 중 산행은 기운을 얻고 나누고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지금까지 많지 않지만 산행을 하였다. 임상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리고 숲의 느낌을 가진다. 이것만으로도 산행을 일상적이지 않은 전문가의 관점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선학회에서 수련의 한 과정으로 하는 산행은 또 어떤 것인가.

비가 심하게 오는 월요일 수련을 못했다. 오늘 수련은 새롭게 참여한 분들로 꽉 찼다. 시간에 맞추어 도달하니 이미 교수님은 도복을 입으신 채 반좌에 들어가셨다. 가볍게 목례하고 도복을 입고 나오니 곧바로 도인체조로 들어간다. 도인체조는 수련 후 까맣게 지워진다. 그런데 따라 하는 것은 조금씩 수월해진다. 그 순서나 방식이 익혀진다. 굴신 운동으로 들어가면 몸이 방해를 한다. 슬쩍 교수님을 보면 동작에 막힘이 없다. 열심히 눈치껏 수행한다. 여태 개별적으로 수련을 지도받은 적이 없다. 눈치껏 따라 배우는 것이라고 여긴다.

도인체조 후 명상에 들어간다. 원장님이 이번 주부터는 반좌로 하라 했던 기억으로 반좌를 한다. 역시 배운 게 없다. 그냥 눈치껏 따라 한다. 한참을 따라 가다가 어깨를 치며 뒤로 나오라는 말에 다시 수공으로 들어간다. 새로 온 분들이 누워 있다. 부원장님이 수공의 방법을 설명한다. 내 쪽은 가장자리라 들리지 않는다. 혼자 할 때는 설명이 없었는데 신입이 많다 보니 설명을 하는 것이다. 못들은 것으로 간주한다. 호흡을 혼자 익힌다. 서두를 것은 없다. 수련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운은 나눌 수 있는 기운이다. 뚜렷하게 선이 그어지고 나누어진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막연하더라도 막연함이 층층으로 쌓이면 막연함의 층층에서 종횡이 나타날 것이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꾀를 부릴 일이 아니라 흙을 만지는 사람으로서의 작정作定이 필요할 뿐이다. 작정만 있으면 성취는 뒷전이다. 좋은 기운 역시 작정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채근담에 <권세에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깨끗하다.>, <권세에 가까이 할지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은 더욱 깨끗하다.>, <권모와 술수를 모르는 사람은 높다. 그러나 알아도 이를 쓰지 않는 사람은 더욱 높다 할 것이다.> 결국 작정에 있다. 작정의 향방은 곧 수련의 질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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