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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저절로 익어야 오래간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저절로 익어야 오래간다 / 온형근

 

자연은 저절로 익어가는 과정이다.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의 골이 깊어질수록 살아가는 일은 혼란스러워진다. ‘부당거래’라는 영화를 보았다. 부당한 세계에 부당하지 않은 사람은 거추장스럽다. 부당한 세계가 마치 바른 사회인양 설치고, 부당거래 당사자들끼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부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조롱한다. 이 영화는 권선징악이라는 과정을 깬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온통 불유쾌한 생각들로 가득 찬다. 가장 부당한 사람은 마지막까지 웃는다. 조금 부당한 사람이나 이제 부당한 세계에 갓 입문한 사람은 제거된다. 부당함이 약한 사람에서 부당함이 강한 사람 순서로 밟혀 나간다. 가장 강하게 부당한 사람만 살아남고, 그 사람은 또 새로운 부당한 세계를 만들어 간다. 대체 어디까지가 정당하고 어디까지가 부당한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디까지의 부당함이 이해가 되고 어느 선부터의 부당함은 질타 받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구분할 수 있는 선을 긋거나 경계를 세우는 일에 머리가 터지도록 아프고 헷갈린다.

조선시대의 기인(奇人) 홍유손(洪裕孫)은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온갖 화훼(花卉) 위에 홀로 우뚝한 것은 일찍 이루어져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무릇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재앙이니,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겠소. 서서히 천지의 기운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억지로 정기를 강하게 조장하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성취되기 때문이라오.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울창하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라오. 대저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 또한 어찌 이와 다르리오. 옛사람들이 일찍 벼슬길에 올라 영달하는 것을 경계했던 까닭도 이 때문이지요.”라고 했다.

[ 菊花開於抄秋, 而凌霜冒風冷, 獨超千卉萬花之上, 以其不早也. 凡物之早成者, 災也. 不早而?成者, 能堅其氣者, 何耶? 以其徐徐聚天地之氣不放, 使不?精, 日月之累遷, 能至於成之自然也. 菊也芽於早春, 長於初夏; 茂於孟秋, ?於秋晦, 所以如此也. 夫人之身世之生事, 亦何異乎! 古之人戒早達, 亦以是也.]
- 홍유손(洪裕孫),〈김 상사에게 준 편지[贈金上舍書]〉,《소총유고(篠叢遺稿)》
 
국화에 빗대어 일찍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경계를 설파하였고, 그것은 곧 사람의 건강과도 함께 간다는 것을 말했다. 천지의 기운을 서서히 저절로 익게 하여 정기를 모으면 세월 흐름에 따라 더욱 성취가 굳어지고 울창해진다는 것이다. 76세에 첫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고 99세까지 산 것을 보면 젊어서 시와 술로 울분을 토로하던 그의 노장 심취 정도와 도가의 양생술에 대한 조예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일찍 아파 본 사람이 오래도록 건강한 사람보다 더 몸을 조심하여 이끌어가는 이치와 같다. 저절로 서서히 정기를 모아 익어가는 이치를 국화를 통하여 관점을 환기시킨 글이다.

모든 것이 조급해져 있다. 미리 정해지지 않으면 기다리는 여유조차 가질 수 없다. 일 순간에 전 세계가 일희일비하는 인터넷 시대다. 그러다 보니 세상살이의 이치 또한 그에 익숙해져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문즉설이어야 한다. 강호에서 한 지류를 형성하여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서야 즉문즉설이 뭐가 어떻겠는가. 마땅히 선지식으로 즉문즉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 생활과 조직에서도 즉문즉설이 난무한다. 쉽게 부당한 말을 하고, 쉽게 그 부당함의 세계에 편입한다. 꼬시는 말도 빠르고 주저 없으며, 넘어가는 쪽도 주저 없이 빠르다. 마치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암묵의 분위기로 위협한다.

2009년 이때쯤, 여주에서 ‘근평관리’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은 지금부터 근평 관리를 시작하여야 승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수원에서 용인, 여주까지 4년을 출퇴근 중이었다.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무엇을 가르치며 어떤 교수학습을 이룰까를 즐겁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가는 교통 불편에 지쳐있기도 했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는데 ‘근평관리’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체. 앞으로 남은 ‘근평관리’ 기간을 매일같이 오늘은 어떻게 ‘근평관리’를 할까 하면서 출근해야 할까? 부지런히 짐을 쌓다. 그 어려운 ‘근평관리’ 그만 두고 출퇴근 가까운 곳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니 마음은 훨씬 자유로웠다. 마치 ‘근평관리’라는 것이 새로운 어떤 세계에 들기 위해 당분간 이도 저도 아닌 생활을 해야 하는 족쇄처럼 여겨진 것이다. 그렇게 ‘근평관리’의 세계에서 떠났다.

2010년 지금이다. 갑자기 부장을 할 수 있겠냐고 전화가 왔다. 나는 부장 년수를 다 채웠고, 부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소지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정중하게 이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부장 아니면 담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 저쪽의 의도가 다분히 불쾌했다. 그건 나중에 원칙을 정해 조직에서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담임을 하고 있지 않은가. 또 해야 되면 한다. 그러나 빠질 수 있으면 빠져야 할 때다. 담임 년수도 내 또래 다른 사람보다 부지기수로 많다. 지금 부장도, 담임도 하지 않는 사람 많다. 모든 것은 정해진 어떤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울타리 영역 안에서 피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다. 귀한 나의 승진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근평관리’니 하면서 사람을 어떤 하나의 세계 문고리에 두고 인격이나 사고와 같은 자유로운 영역까지 관리하라는 것은 다분히 저어한다. 바르고 바르지 않음에 대한 무뇌아를 만들거나, 무조건 옳습니다라고 박수치며 굽신 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경계한다.

모든 것이 국화처럼 저절로 익을만큼 세월이 지나야 이루어진다. 인위적으로 어떤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과 반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은 위험하다.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교섭하고 작당하고 만들어 내는 일은 시정잡배 중에서도 양아치와 다름 아니다. 최소한 근평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사람을 만들어내는 교사를 붙잡을 수 없다.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정확한 관점과 관찰과 분석으로 관리자가 될 사람을 가려내서 그를 키우고, 누가 보아도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되었음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시야를 지닌 사람이 최고 관리자여야 한다. 노름판처럼 흥정이나 하고, 그러고 어떤 부당함을 눈감아 주는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술좌석에서 가장 싫은 사람의 부류가 있다. 인사, 시국, 출세, 도박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술좌석 뿐이 아니라 조직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피한다. 인사가 만사니, 능사니 하는 말보다는 저절로 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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