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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주말 산행과 폭포 식당

by 나무에게 2013. 12. 23.

주말 산행과 폭포 식당 / 온형근



시월 중순의 광교산 등산은 단풍이라도 가깝게 볼 수 있을까 했다. 아직 이르다. 이르지만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큰처남과 처남댁과 만나 정호와 함께 오르는 경기대 코스다. 이 코스는 늘 불만이다. 오르고 내리는 길에 너무 사람이 많다. 건조한 날씨로 풀풀 날리는 흙먼지 또한 대단하다. 한국의 주말을 수놓는 검정색 일색이 산길을 가득 채운다. 나도 바지는 검정색이다. 상의는 굳이 챙기지 않고 늘 입던 자연스러운 복장으로 한다. 너무 일색인 것에 대한 경계이다. 벌써 사람들의 바짓가랑이는 흙먼지로 색이 변하여있다. 오르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분주하다. 그래서 경기대 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만나서 함께 오르는 일의 접근성과 약속장소로서 반딧불이 만한 곳이 없다. 주차장이 있고, 버스가 있고, 랜드마크인 잘생긴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경기대 코스는 그런대로 급격한 오르막길이 두 세 번 있다. 나는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 좋아한다. 반면에 급격한 내리막길을 힘들어한다. 정호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모두를 힘들어한다. 아직 자연스럽게 자주 체험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아주 조심스럽게 발길을 내딛는다. 말로는 '무섭지 않다'고 외치면서도 발길은 살얼음을 내딛고 있다. 너무 늦으면 내 손을 잡게끔 이끈다. 그래도 '손을 놓아달라'고 곧잘 청한다. 근래 부쩍 자존심 건드리는 일에 부정적 화법을 사용하는 것이 늘었다. 사실 내가 즐겨가는 코스는 몇 개가 있다. 그 중에도 정호와 즐겨 찾는 코스는 버스 종점에서 왼쪽 화장실을 비껴 조금 더 올라가 '철쭉길 코스'라 명명한 곳이다. 이곳은 접근성과 오르는 동안 만나는 사람이 몇 없다는 그 차분하고 조용함에 즐길만한 곳이다.

처음에 정호와 함께 이곳을 등산할 때 주로 쓴 전략도 기억난다. 오르막길이 나오면 업어달라했고, 업어주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는 특징에 힘입어, 정호를 그냥 두고 마냥 올라가 숨었다. 그러면 정호는 그때부터 무서움을 느꼈는지 이름을 부르며 뛰오 오른다. 힘은 있는데 힘든 상황을 견디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평상시처럼 만큼만 힘을 나누어 쓰려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국면과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에 노출되기 어려웠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만큼의 국면과 상황을 이어나간다. 새로움에 이르는 과정은 더디고 서툴다. 그러나 어떤 코스를 가던지 내려올 때는 집에 간다는 기쁨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 잊지 않고 내려오는 과정을 즐긴다. 평소에 마시지 못하는 콜라와 바비큐를 눈치 없이 자신 있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를 위해, 들리는 곳이 '폭포식당'이다. 보리밥과 바비큐를 먹기 위함이다. 김영일 사장에게 눈짓을 한다. 농업경영인이다. 장사꾼이 아니다. 이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일관성 있는 어떤 이미지를 심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자기 관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보리밥은 끊임없이 상추 등 채소를 손님이 리필할 수 있다는 점이 신나는 일이다. 부지런한 사람, 몸을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어떤 날 와서 보면 엄청난 양의 나물 재료를 다듬고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김치나 열무 등을 담글 때도 김영일 사장이 직접 경운기로 밭에서 재배한 재료를 실어 온다. 몇 차례 그렇게 운반하고 마당에 도열한 많은 아낙들이 이를 받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곤 한다. 그렇다. 김영일 사장은 직접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폭포식당은 넉넉하다. 개인적으로 눈이 마주치면 살뜰하게 주변을 챙겨주는 그가 좋다. 그게 나만일까 싶으면서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장사꾼이면서 장사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식당이면서 식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지 산행 후 내려오면서 들려야 하는 내 개인의 산장처럼 여겨진다. 잔칫날처럼 누구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산장에 많은 산행꾼들이 내려와 야단법석이다. 다양한 경력과 다양한 삶을 가진 무리들이 어울려 왁자한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거기다 산행 내내 물을 마시지 않고, 참고 참았던 수분 부족을 막걸리 한 잔으로 해결하는 나의 인내는 맛에 대한 몰지각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막걸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해치우는 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는 일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아주 느긋하게 채소를 계속 찢어 넣는다. 그리고 다시 비비면서 저작의 기쁨을 만끽한다. 가끔씩 주변을 보며 흐뭇하다. 시골 잔칫날의 복원이다.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개체로서의 역할을 다시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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