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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책상을 되찾다

by 나무에게 2013. 12. 23.

책상을 되찾다 / 온형근


책상을 찾았다. 1인치의 책상이 아니라, 무려 12인치의 책상이다. 우리나라 척도로 10자가 조금 넘는다. 10자의 책상을 찾았으니 책상은 책상답다. 책상을 잃은 것은 컴퓨터를 사용하고 나서다. 컴퓨터용 책상, 서재용 책상을 따로 쓸 수 있는 여유가 아닌 채, 컴퓨터 하나면 모든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일까. 아무튼 책상이 책상 답지 않고, 컴퓨터에게 모든 여분을 나누어진 상태에서 그럭저럭 살았다. 일이 있거나 시간이 있으면 으례 컴퓨터를 켜거나 해서 하루를 정리한다. 그러니 불편한데도 불편함에 반기를 떠올리지 못했던 거다.

실제로 책을 볼 때는 침대에 누워서 보다가 잠을 자곤 했다. 눈높이독서대도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다. 책에 있는 사진을 찍을 때만 눈높이독서대를 이용하였다. 책상을 책상답게 하자는 모색에는 금년의 폭염이 일조를 한다. 너무 더우니 침대에 눕기가 싫다. 그렇다고 허구헌 날, 거실 맨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있기에는 가족들의 눈총이 쉽지 않다. 한 번 읽으면 마칠 때까지 몰두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이번 더위는 CRT 모니터의 열기가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모아주었다. 내친 김에 CRT 모니터의 크고 웅장함과 결별을 하면 어떨까에 미친다.

과소비와 마주하고 있었다. 며칠을 따져 보았다. 얼머 전에 사용하던 모니터가 오래되서 화면의 화소가 깨져 중고 CRT 모니터를 싸다고 가지고 와 득의만연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화면 좋은 것이 왜 이래 싸졌냐고 말이다. 사람들은 새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런 좋은 모니터를 쉽게 버린다. 얼마냐 좋으냐 하면서 별탈 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 더위에 그만 미운 털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보다는 책상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 더 큰 작용이다. 가격대비 성능을 중시하면서 인터넷을 뒤졌다.

중고를 눈여겨 보다가 델 컴퓨터의 모니터에서 새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USB 포트가 LCD 모니터에 달려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여기서 새 것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그러다가 가격을 따지게 된다. 결국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머뭇대다가 사용하던 CRT 모니터로 돌아선다. 바로 살 수 없었다. 아니야 그냥 기존의 컴퓨터를 바깥 화장대 여유 공간으로 비껴 놓고 그 위에 모니터를 올려 사용하면 책상이 나온다. 모니터가 높아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책상이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 집에서 크게 컴퓨터를 쓸 일이 있느냐? 하는 우격다짐도 발휘한다.

노트북이 있으니 랜 선만 옮겨 가기 쉽게 PC 본체 뒤가 나오도록 돌려 놓으면 된다. 그리고 노트북을 가져와 책상에 놓고 그렇게 해 본다. 아니다. 노트북의 키보드가 책상에 놓이니 너무 높다. 직장에서도 사실 그게 가장 큰 짐이었다. 따로 키보드를 사용하려고 오래된 짐을 끄집어 냈다. USB로 꽂는 키보드가 없다. 여기까지가 사흘 정도 걸린 셈이다. 다시 LCD 모니터로 생각을 돌렸다. 내친김에 가격대비 성능에서 보아 두었던 파인포스라는 제품의 17인치 모니터를 구입하였다.

구입한 지 하루만에 모니터가 도착한다. 오후 1시30분쯤 도착하였는데 뜯고 기존 PC에 연결하니 속도도 안정성도 모두 증진된 느낌이다. 사실 증진될 이유가 없다. 그래도 하드 정리를 하고, 파일을 정리한 상태다. 되찾은 책상이 너무 신난다. 이 책상이 잠들 때는 아무 것도 올려 놓지 않을 것이다. 땅바닥에 내려놓더라도 이 책상은 늘 비워둘 것이다. 어떻게 되찾은 책상이냐. 내 너를 끔찍히도 귀여워할 것이다. 되찾은 책상에게 짐이 되는 어떤 것도 부여하지 않는다.

나는 책상에게 책상은 나에게 서로 원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제 다시는 되돌려줄 책상은 없다. 내 손으로 치우고 닦고, 올려 놓아 사용한다. 사실 물건들이란 없다가 나타나고 치우면 보이지 않을 뿐, 호시탐탐 주인 근처로 다가오려고 음모를 꾸민다. 잊혀져 있다가도 어느 계절, 어느 공간, 어느 희망에 이르면 다시 떠오르고 나타난다. 그러한 획책을 허용하기 위해서도 책상을 책상답게 비워둘 것이다. 책상이 미소짓는다. 내 마음이 들킨다. 비울 것은 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