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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달마가 서녘에서 온 까닭은?

by 나무에게 2013. 12. 23.

달마가 서녘에서 온 까닭은? / 온형근



<용아가 취미 화상에게 "달마가 서녘에서 무엇하러 왔습니까?" 하고 물었다.
취미 화상은 "선판을 좀 갔다 주게나" 하고 말했다. 용아가 선판을 갖다 주니까, 취미 화상은 다짜고짜 그것으로 후려쳤다. 용아는 "칠 테면 치십시오. 그런다고 달마가 서녘에서 온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했다. 용아는 이번에는 임제 화상에게 "달마가 중국에 무엇 하러 왔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임제 화상도 "저 방석 좀 갔다 주게" 했다. 용아가 방석을 갖다 주니까, 임제 화상 역시 그것으로 철썩 때렸다. 용아는 "때릴 테면 때리십시오. 그런다고 달마가 서녘에서 온 목적이 해결되진 않습니다." 하고 들이댔다.>

용아라는 젊은 중이 취미, 임제 두 선사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내두르다 호되게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취미도 임제도 "달마가 무엇하러 중국에 왔는가?에 대하여 면벽 9년의 좌선 때문에 왔지. 그래 그 좌선의 흉내를 내보겠느냐" 하는 뜻에서 취미는 선판(禪板 : 오랜 시간 좌선하여 피곤할 때 잠시 몸을 기대고 쉬는 널빤지)을 좀 갖다 달라고 했고, 임제는 포단(蒲團 : 부들로 만든 둥근 자리, 좌선할 때 쓰는 둥근 방석)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말한 동기는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지쳤다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말하려고 준비하라는 뜻을 비쳤으나, 이 점을 깨닫지 못한 용아는 고지식하게도 그대로 갔다 주었다. 그래서 취미, 임제 둘 다 "이 멍청이야" 하고 "받아들자마자 후려친"(접득변타 : 接得便打) 것이었다.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하다 온 천지에 진리가 가득한 것을 놓치는 격이다. 공연한 헛수고를 하는 일은 없는지를 생각해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따질 일만은 아니다. 자신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용아도 결국 그 후에 눈을 떴다. 그렇게 여행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취미, 임제 선사에게 용아는 멍청이일 뿐이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지친 사람에게 용아의 세계는 아무리 강조하고 대들어도 고지식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취미,임제가 다시 용아의 세계로 들어가 용아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용아는 용아의 세계에서 더 많은 근접치 못할 우주의 진리를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용아의 세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할 것이다. 세상을 손에 넣은 듯한 우둔함을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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