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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청탁020-淸濁

by 나무에게 2013. 12. 23.

청탁020-淸濁 / 온형근



수련 후 지금까지 명료하다. 玄門선생이 직접 지도한 날이다. 기장이 펼쳐져 있다. 상기병 또는 홧병, 혈압이 높은 것 등에 유익한 수공을 했다. 수공 2식인 셈이다. 발바닥의 용천이 뜨거웠다. 10여년 국선도를 하신 분은 오늘 처음인데 사방 뚫렸다 한다. 玄門선생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뜨거운 수련이다. 회장님이 직접 주도할 때는 노도와 같은 밀려듬 같은 것이 느껴진다. 도인체조 끝부분을 곧바로 연결하여 수공으로 이어진다. 또렷하게 알아듣고 행한다. 놓치지 않으려는 공력이 내게 있다.

도인체조 역시 다른 어떤 날보다 강력하다. 더 큰 동작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수련한다. 이 또한 지금까지의 도인체조 중 가장 센 수련이다. 내 스스로 도장 밖에서의 일을 하나씩 떠올리며 큰 동작과 센 기운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하나씩 지워낸다. 나중에는 힘들다는 생각만 남는다. 도인체조 동작에만 집중된다. 땀이 억수로 떨어지고, 속옷과 도복이 젖는다. 세탁한 첫 날이지만 또 세탁하기로 마음먹고 푹 젖는다. 속이 후련해지기 시작하고 굴신 운동 역시 오금이 저리도록 강하다.

거의 일방통행의 회의에서 말 한마디 침 한 번 꿀꺽 제대로 넘겨보지 못하고 1시간 30여분을 앉아 있다 나왔다. 인내의 한계를 실험한다. 어떤 이의 말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 역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할 말을 정리하여 적당한 예화를 곁들여 시종일관하는 사람이 있다. 뼈대를 구축하고 살을 붙인다. 사람을 만나고 장소를 바꾸고 상황을 바꾸어가면서 진정성과 논리를 펼친다. 나를 따르라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그는 혼자이지 않을까. 또래 동료들은 모두 돌아앉아 있는데 수직적 관계를 지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외로운 행군이다.

처음에는 많은 생각을 기다렸다. 조금 더 기다리며 다다르게 하여야 했는데, 단정하고 만다. 더 나올 게 없다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회의에서의 말은 매우 단정적이다. 그 속에 앉아 있던 나는 힘들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다 틀렸다는 심사다. 여태까지 어떤 행사에도 잘 나서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요즘 건강하다. 긍정적이고 실하다. 굼뜨지 않고 적극적이어서 눈에 잘 띈다. 나는 요즘 그가 그동안 보여 주었던 그 처세술로 가려고 하는데, 그는 오히려 저만치 다른 길로 접어들어 있다. 거참..사람들은 참 묘하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러 저러할 때, 나는 위기 의식으로 일상을 지켜냈다. 나 또한 외로운 행군이었다.

7월의 어느날 수첩에 ‘내가 풀을 깎는 것은 풀을 깎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야’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비겁과 교환한 전리품’이라고 써져 있다.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평화 의식을 지켜내기에 충분하였다. 입을 열면 닫히지 않을 것 같다. 침을 뱉으면 다시 내 입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사람에게 지위와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외투가 있느냐 없느냐는 사람의 출발점 행동에 차이를 지니게 한다. 백일축기 기간이다. 축기라는 것은 말을 적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築基를 위해 말수를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입을 꽉 다물고 서둘러 버스를 타니 간신히 주어진 시간에 도착, 수련을 할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사람이 많고 덥고 회장님의 강력한 기장이 도장에 펼쳐 있어서인지 다른 날과는 큰 차이가 난다.

오늘 수련에서 용천이 열렸다. 열렸다고 믿는다. 뜨거운 기운을 가졌다. 서로들 만족해하는 표정이 곳곳에 서린다. 5기생 중 많은 분들이 국선도에서 수련하다 왔다. 가끔 회장님의 높은 도력이 이럴 때 극명하게 보여진다. 가끔 도술을 부리는 것이 분명하다. 도인체조를 마무리 하다 수공으로 들어갔다. 수공에서 일어나면서 묵주오행을 한다. 왼쪽 발이 계속 저렸으나 끝까지 무시하고 수련을 한다. 저녁을 굶었지만 회장님이 탁한 음식을 삼가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맑은 음식이 뭐고 탁한 음식이 뭔지를 도통 잘 모르겠다.

청탁淸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은 탁한 음식이라 한다. 반면에 초밥, 회, 생선, 오리, 옻닭 등은 맑은 음식이라 한다. 조금 있으면 체질이 바뀌게 되는데 그때는 평소에 찬 음식을 못 먹던 사람도 먹을 수 있다. 그러니 회도 먹게 된다. 그런 요지다. 지금까지도 별로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억지로 맞춰가지 않아도 된다. 얼추 탁한 음식을 좋아한 것 같지 않다. 근데 궁금하다. 탁주는 탁한 음식인가? 묵주오행을 하는데 왜 그리 목구멍이 칼칼하고 아픈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담배와의 인연을 끊을 때가 왔나보다. 많이 무르익은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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