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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성묘019-省墓

by 나무에게 2013. 12. 23.

성묘019-省墓 / 온형근



성묘를 다녀왔다. 작년에 애써서 톱 하나로 아버님 묘 앞의 활잡목들을 제거했는데, 여전히 시선이 열려 있다. 냅다 먼 산으로 나들이 할 수 있을만큼 유효하다. 다만 잘려진 나무의 밑둥에서 맹아가 발생하여 조금씩 지표를 뒤덮고 있다. 내년 쯤에는 다시 시선의 유효함을 지켜내야 한다. IMF 이후 버려진 과수원들이 다시 가꾸어진다. 어느 해인가는 입구가 봉쇄되어 길을 만들며 산소에 다가가야 했다. 이제는 가꾸는 사람들의 차까지 산소 입구에 가 있다. 거기서부터 소롯길을 만들며 산소로 가는데, 작년에 만든 길의 흔적이 뚜렸하다.

길의 흔적을 보면서 내 흔적도 갈수록 뚜렷하다는 것을 믿는다. 전에는 자주 잊어 무심하여 남는 게 없었으나 이제는 조금씩 진해지며 기억으로 전이된다. 분명 작년 이맘 때쯤 길을 만들어 놓은 기억이 흔적과 함께 뚜렸하다. 그렇게 한참을 소롯길을 만들어 올라가니 아버님 묘가 보인다. 반갑다. 동생과 함께 인사 올릴 자리를 정리하고 인사올린다. 말을 많이 나누었다. 묘 허리가 약해져 있다. 발로 다진다. 그러면서 자위한다. 참으로 인간적인 묘를 사용하고 있다. 묘에 예취기 같은 기계를 사용할 수 없다.

잔디가 많지 않아 전체적으로 풀이 많다. 동생과 나는 낫을 가지고 벌초를 한다. 그러면서 내가 말했다. 이 정도면 참으로 생태적인 벌초라고 말이다. 이제 곧 추워지는데 예취기로 생땅을 드러낸 다른 묘들보다 낫으로 듬성듬성 골라내듯 벌초한 묘는 얼마나 풍성해 보이냐고 말했다. 동생도 끄덕인다. 아버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 대화를 나누듯 나는 열심히 말한다. 아버님 묘의 정상에서 멀리 내다 보이는 산을 바라본다. 시원하게 뻗어 나간 시선을 오랫동안 따라가 본다. 이곳에서 늘 바라보고 계실 아버님의 시선과 합쳐진다.

성묘省墓는 묘를 살핀다는 의미를 지녔다. 살피는 것은 자주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일년에 2번 정도로 살핀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벌초 후 제단을 꾸미고 북어포와 과일과 떡과 술을 진열한다. 약식이지만 진지한 제사를 올린다. 나도, 동생도 술을 따로 더하여 올린다. 나와 동생의 조상님의 음덕을 바라는 내용이야 같지 않겠지만, 이제는 음덕을 비는 것 자체를 소중하게 여길만한 나이에 이르렀다. 금선학회에서 회장님의 말씀이다. 성묘하고 돌아 올 때는 반드시 고향의 산천을 두루 오르고 살펴보라고 말이다.

성묘 후 둘러보는 고향의 산은 많은 기운을 고르게 안겨준다고 한다. 산의 묘는 갈수록 많고 잘 가꾸어져 있다. 오르 내리는 길이 좋아지고 비석 등 묘의 치장도 화려해져 있다. 멀리 눈을 들어 보면 온 산에 가을의 정기가 품어져 있다. 아버님 산소 높이에는 모두 먼산의 흐르고 진한 산들이 층을 이루며 읍하고 있다. 잠시 앉아 긴 호흡으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본다. 오후의 일정이라 햇살이 매우 강하다. 신선의 바둑 한 판에 도끼 자루가 썩었다고 하니, 이승의 시간이란 얼마나 짧은 것인가. 혼자 시간을 보내실 아버님을 애통해 하고 있는 것은 내 시간 관념의 허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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