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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타력040-他力

by 나무에게 2013. 12. 23.

타력040-他力 / 온형근


흐르는 대로 간다. 바람이 세차면 헤쳐진 가슴 그대로 맞이한다. 여미고 단속하지 않는다. 약한 비가 오면 그대로 걷거나 세찬 비가 오면 잠시 자리를 피하고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렇게 시간의 축이 이동하도록 둔다. 여미고자 단속하고자 피하고자 급한 마음 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게으른 꾀가 있다. 매일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하듯이 게으른 꾀 역시 긁어 주어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내가 나서야 한다. 나설 수 없을 때는 잠시 유보시킨다. 차곡차곡 쌓아 두면 인연법의 순리에 의해 선후가 다르게 먼저 익거나 터져 나오는 것이 있다. 잘 익어 터져 나오는 것은 좋은 기운과 함께 성사된다. 타력他力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게으른 사람의 덫이다. 큰 업을 짓는 것이다. 성찰이 아니라 수행이어야 한다. 내면에서 비롯되는 깊은 깨달음과 함께여야 한다. 타력에 의한 일의 도모는 머리로 세상을 맞이하고 살아가는 까닭이다. 자력에 의지하여 성취하고자 함은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이는 인지가 아니라 습관이어야 하며 말과 생각의 크기보다는 움직임의 질량이 앞서는 일이다. 게으름은 타력을 부르고 움직임의 질량과 민첩함은 제 몸의 수행을 이룬다. 다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날개를 달지 않게 하소서. 머릿속에서 운행되지 않고 내 몸 속에서 노도처럼 들끓어 저절로 문리가 트이고 순리를 이루어 익고 터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더 큰 업을 짓지 않도록 하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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